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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徐敬德)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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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가구(可久)
호(號)화담(花潭)
호(號)복재(復齋)
시호(諡號)문강(文康)
생년1489(성종 20)
졸년1546(명종 1)
시대조선전기
본관당성(唐城)
활동분야학자 > 유생
서호번(徐好蕃)
처부이계종(李繼從)
저서『화담집』

[상세내용]

서경덕(徐敬德)
1489년(성종 20)∼1546년(명종 1). 조선 초기의 학자. 본관은 당성(唐城). 자는 가구(可久), 호는 화담(花潭) 또는 복재(復齋).
1. 가계와 수업
부위(副尉) 서호번(徐好蕃)의 아들이며 모계는 실전(失傳)이다. 어머니가 공자(孔子)의 사당에 들어가는 꿈을 꾸고 잉태하여 그를 낳았다 한다. 나이 7∼8세에 이르자 총명하고 영특하여 어른의 말을 공경히 받들었다.

1502년(연산군 8) 14세 때 『서경』을 배우다가 태음력의 수학적 계산인 일(日)‧월(月)운행의 도수(度數)에 의문이 생기자 보름동안 궁리하여 스스로 해득하였다.

18세 때 『대학』의 치지재격물(致知在格物)조를 읽다가 “학문을 하면서 먼저 격물을 하지 않으면 글을 읽어서 어디에 쓰리오!”라고 탄식하고, 천지만물의 이름을 벽에다 써 붙여 두고 날마다 궁구(窮究)하기를 힘썼다.

19세에 태안이씨(泰安李氏) 선교랑(宣敎郞) 이계종(李繼從)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31세 때 조광조(趙光祖)에 의해 채택된 현량과(賢良科)에 응시하도록 수석으로 추천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개성 화담(花潭)에 서재를 세우고 연구와 교육에 더욱 힘썼다.

1531년(중종 26) 어머니의 요청으로 생원시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더욱 성리학의 연구에 힘썼다.

1544년 김안국(金安國) 등이 후릉참봉(厚陵參奉)에 추천하여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계속 화담에 머물러 연구와 교육에 몰두하였다.

특히, 예학에 밝았으며 중종인종이 죽자 “임금의 상(喪)에 어찌 복(服)이 없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 자최삼월(齊衰三月)의 복을 입었다. 황진이(黃眞伊)의 유혹을 물리친 일화가 전하며, 박연폭포(朴淵瀑布)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린다.
2. 기일원론 주창
송대의 주돈이(周敦頤)소옹(邵雍) 및 장재(張載)의 철학사상을 조화시켜 독자적인 기일원론(氣一元論)의 학설을 제창하였다.

「태허설(太虛說)」에서 우주공간에 충만하여 있는 원기(原氣)를 형이상학적인 대상으로 삼고, 그 기(氣)의 본질을 태허라 하였다. 기의 본질인 태허는 맑고 형체가 없는 것으로 선천(先天)이라 한다. 그 크기는 한정이 없고 그에 앞서서 아무런 시초도 없으며, 그 유래는 추궁할 수도 없다. 맑게 비어 있고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는 것이 기의 근원이다. 널리 가득 차 한계의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꽉 차 있어 비거나 빠진 데가 없으니 한 호리(毫釐)의 용납될 틈이 없다. 그렇지만 오히려 실재(實在)하니, 이것을 ‘무(無)’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생성과 소멸하는 모든 것은 무한히 변화하는 기의 율동(律動)이다. 바람처럼 파도처럼 또 소나기처럼 밀리고 맥박치는 생(生)과 구름처럼 물방울처럼 사라지는 멸(滅)의 본체가 무엇이냐? 부침하고 율동(律動)하는 태허기(太虛氣)의 고탕(鼓燙)이다.

따라서, 서경덕의 기는 우주를 포함하고도 남는 무한량(無限量)한 것이며, 가득 차 있어 빈틈이 없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한 존재이며,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만물을 생성할 수 있으므로, 그것 이외에 어떤 원인(原因)이나 그 무엇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기(氣)는 모였다가 흩어지는 운동은 하지만 기 그 자체를 소멸하지 않는다. 기가 한데로 모이면 하나의 물건이 이루어지고, 흩어지면 물건이 소멸한다. 이를 물이 얼면 얼음이 되고, 얼음이 녹으면 다시 물로 환원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서경덕은 “일편향촉(一片香燭)의 기라도 그것이 눈앞에 흩어지는 것을 보지만, 그 남은 기운은 마침내 흩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물리학에서 밝히고 있는 에너지 항존율(恒存律)과 같은 서경덕의 일기장존설(一氣長存說)인 것이다.

이기설의 입장을 밝힘에 있어서 그는 “기 밖에 이가 없다. 이란 기의 주재(主宰)이다. 주재란 것은 밖에서 기를 주재하는 것이 아니요, 기의 움직임이 그러한 까닭에 정당성을 가리켜 이것을 주재라 한다. 이는 기보다 선행할 수 없다. 기는 본래 무시(無始)한 것이니, 이도 본래 무시한 것이다. 만일, 이가 기보다 선행한다고 하면 이것은 기가 유시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서경덕이 이를 기 속에 포함시켜 둘로 보지 않는 견해로서 기일원론인 것이다.

인간의 죽음도 우주의 기에 환원된다는 사생일여(死生一如)를 주장함으로써 “만물은 모두가 잠시 기탁한 것같으니, 떴다 가라앉았다 함도 일기(一氣)가운데요, 구름 생길 때 그 자취를 보거니, 얼음 풀린 뒤 그 자취 찾아도 없더라. 낮과 밤은 밝았다 어두웠다 하지만, 원(元)과 정(貞)도 시작했다 또 끝났다 한다. 진실로 이러한 이를 밝게 안다면 장구치면서 우리 님을 보내오리다.”라고 주장하여 불교의 인간생명이 적멸(寂滅)한다는 주장을 배격하였다.
3. 평가와 저술
이러한 서경덕의 학문과 사상은 이황(李滉)이이(李珥)같은 학자들에 의해서 그 독창성이 높이 평가되었으며, 한국 기철학(氣哲學)의 학맥(學脈)을 형성하게 되었다.

1575년(선조 8) 우의정에 추증, 1585년 신도비가 세워졌다. 개성숭양서원(崧陽書院)화곡서원(花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화담집』이 있으며, 그의 사상적인 면모를 밝혀 주는 「원이기(原理氣)」‧「이기설(理氣說)」‧「태허설」‧「귀신사생론(鬼神死生論)」 등의 대표적인 글을 수록하고 있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참고문헌]

花潭集
中宗實錄
明宗實錄
宣祖實錄
燃藜室記述
海東名臣錄
國朝人物考
朝鮮儒敎淵源(張志淵)
朝鮮儒學史(玄相允)

[집필자]

이애희(李愛熙)

성명 : "서경덕(徐敬德)"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國朝編年v08衣資俄而傳敎曰與其母洪氏共知逆類之歸嚮遂生潛逼之心其所推卜語涉干逆不可一日苟容於覆載之間○秋七月處士徐敬德卒公字可久自號復齋又號花潭唐城人公天資聰穎特出嘗以親命應擧上庠卽抛科業卜築松京花潭專以窮格爲事或默坐
國朝編年v09補遺○許天使又問東方亦有能知孔孟心學箕子疇數者退溪錄示高麗禹倬鄭夢周本朝尹祥金宏弼鄭汝昌趙光祖李彦迪徐敬德等○退溪又論佔齋金宗直非學問底人終身事業只在詞章之上又曰寒暄堂金宏弼之學踐履雖篤而於學問工夫恐有未盡
國朝編年v09不成及拜諫長乃以按獄失體啓請推委官朴淳罷禁府堂上上不從時洪曇力言此獄必寃許曄力言此獄必可成○贈故處士徐敬德右議政諡文景○上謂侍臣曰敬德所著書我取而觀之則多論氣數而不及於修身之事無乃數學耶且其工夫多有可疑處李
國朝編年v12忽倚枕呻吟謂家人曰我其逝矣焂爾而化年六十七及屬纊天雨雷鳴其夜白氣亘天光芒燭地淳早知爲學之方受業于花潭徐敬德得聞性理中事李退溪滉多所啓發退溪常稱與朴淳相對炯然一條淸氷高峯奇大升亦言剖柝義理明辨剴切吾所不及其見
國朝彙鑑v1三十九年夏五月以徐敬德爲厚陵參奉敬德松都人結廬花潭之上聚徒講學其學硏窮自得類橫渠襟懷沖曠類康節留守宋㻩欲以其孝行啓聞旌褒敬
紀年便攷v10命文武二品以上各薦一二人權習崔繼成徐敬德成守㻠趙晟禹成勳辛百齡金就成曺植琴軸鄭弘翼金大
紀年便攷v10甲辰三十九年嘉靖二十三年參䝺官宋世珩奏請趙光祖復官上首肯良久○以徐敬德為厚凌參奉不就敬德硯窮自得類橫渠襟懷冲曠類康節○戶曺參議李名珪奉使如京歸獻幽風七月圖特賜法醖奬之○奪
紀年便攷v12徐敬德
紀年便攷v12徐敬德唐城人副尉好蕃子成宗己酉生字可久號復齋又花潭李延慶門人與李滉曺植從遊生於松京母韓氏夢入夫子廟而生敬德
紀年便攷v12驪州人生員蕃子孫昭外孫成宗辛亥生初名廸中宗命加彦字字復古號晦齋又紫溪翁金德秀門人初從內舅孫仲暾學又從徐敬德趙晟遊中宗癸酉進士甲戌登別試初隷校書歷銓郞辛卯以司諌力沮金安老之入見忤於安老及沈彦光被劾罷歸丁酉安老
紀年便攷v16李得胤西溪宋爾昌清㘴閔在汶白蓮學於起宋寅朴淳以詩簡相称此為起師反之正也篤論之士以淳實勤學称之而李植以徐敬德之學目之宣祖辛卯卒年六十九肅宗壬申贈持平 當宁庚戌贈奎章閣提學謚文穆
東國歷代總目v02丙午元年皇明世宗嘉靖二十五年處士徐敬德卒○敬德字可久號花潭唐城人築室於松京花潭深究邵易仁宗朝以薦授職至是卒年五十八宣祖朝贈右議政
歷代帝王紀年v01花潭徐敬德字可久唐城人嘗夢入文廟而生年甫七歲聰明剛毅不肯爲一毫非義事觀書不過三遍終身不忘不喜科業以父母命中司馬
國朝捷錄v01大獄後朴淳上疏斥元衡尹春年其後李栗谷請削乙巳禍金明胤誣告尹任推戴鳳城桂林瑠亦窺大位於是大禍作丙午花潭徐敬德卒字可久○乙卯設備邊司甲子听松處士成守琛卒字仲玉
國朝捷錄v01徐敬德
國朝捷錄v01跡遯世不知所終吳訒隨使入唐見玉樞經於道家千金易之東敀鄭鵬成廟時人與丁壽崑同化仙去南越中宗時人智異山人徐敬德花潭權克中靑霞得內法丹尸解白雲山中後三年白晝過家不入見者告其家人家人挽衣不留著參同契鄭北窓一號淸慀中
靑邱風雲v1徐敬德字可久號花潭贈右相李□□浩號退溪眞寶人中廟□第宣廟庚午卒辛酉生長栗谷二十五年曺植字健中號
韓史綮v1嘉靖十九年秋七月命文武二品以上擧遺逸之士左議政洪彦弼薦權習左贊成蘇世讓薦崔繼成漢城判尹金安國薦徐敬德刑曹判書柳仁淑薦成守琛趙晟刑曹參判金正國薦禹成勛兵曹判書柳灌薦辛百齡大司成李彦迪薦金就曹植知中
韓史綮v1旣還與元衡爭權元衡怒春正月使臺官論元老前罪及貪縱狀文定后乃竄元老于邊尋賜死○秋七月徵士徐敬德卒敬德開城人少英警好推究物理盡書大地萬物之名於壁上危坐一板仰思以通如是者五六年然後始取四書五經證之
韓史綮v1有方飮酒數斗不亂尹任之獄力諫父父不聽乃陽狂潛藏是年作自挽歌坐化年四十四人稱北窓先生初仁宗聞及徐敬德之名欲用爲領議政敬德爲右議政猝薨未果焉○以尙震爲右議政震始仕時嘗還鄕道見田父牧二牛問二牛孰善耕田
韓史綮v1古今治亂及本國目前之急務多所明切王優奬之○尊本生考德興君爲德興大院君○李之菡者穡之後也少從徐敬德游博學多能嘗爲商販赤手致穀數千碩旣而笑曰吾聊試之耳盡予貧者罷其業善忍飢或旬日不火食或着鐵冠脫而炊飯飯
韓史綮v1貴人問之則植已卒矣贈官以奬之植少時豪爽好文章旣而反于經學踐履嚴篤嘗危坐一室以兩手捧盞水以終夜與徐敬德成悌元成運李之菡奇大升等諸人爲友嘗與諸人會于俗離山講論李浚慶聞之曰應有德星見于天矣大升遵之子也
韓史綮v1六月領議政朴淳卒淳爲人表裏潔白與盧守愼竝相者十四年自以才短於經濟惟恪守成法薦賢讓能如恐不及少師徐敬德治經學兼長於詩明使驅希稷以宋人物唐詩調目之○秋七月平義智以沙火同來且獻孔雀一雙烏銃一枚王遂許好于
國朝人物志v1試義之意亦晨起佯悲曰夢父母言田宅奴婢欲以付汝未及而終吾以是悲義曰春夢何可盡信貞大笑而已義與徐敬德成世昌爲友世昌隔隣相居義見其園哂三紬潛取之婢呼曰沈佐郞晝取紬去成夫人亟以他三紬送之
國朝人物志v2運身遭鴒原之痛遯於報恩李滉心傷同氣之被禍退居禮安林億齡駭見百齡之戕賢棲遲外服徐敬德之遯于花潭金麟厚之絶意名宦曺植李恒之幽棲海隅鄭之雲之逃名麴孼者莫非己卯乙巳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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