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언광(沈彦光)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CC5B8AD11B1487X0 |
자(字) | 사형(士炯) |
호(號) | 어촌(漁村) |
시호(諡號) | 문공(文恭) |
생년 | 1487(성종 18) |
졸년 | 1540(중종 35)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삼척(三陟)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심준(沈濬)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심언광(沈彦光)
1487년(성종 18)∼1540년(중종 35).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삼척(三陟). 자는 사형(士炯), 호는 어촌(漁村). 예조좌랑 심준(沈濬)의 아들이며, 찬성 심언경(沈彦慶)의 동생이다.
1507년(중종 2)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서 1513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에 보임되었다.
그뒤 호당(湖堂)에 들어가 사가독서하면서 문명을 날려, 지평‧정언‧장령‧홍문관교리‧집의 등의 청요직을 두루 지냈다. 언관을 역임하면서 국방문제의 중요성을 제기하였고, 국가기강의 확립을 위하여 심정(沈貞)을 비롯한 권간들의 횡포를 탄핵하였다.
1530년 대사간이 되어서는 형 심언경과 함께 김안로(金安老)의 등용을 적극 주장, 실현시켰다.
그러나 김안로가 조정에서 실권을 장악하면서 붕당을 조직하고 대옥(大獄)을 일으켜 사림들을 모해하자, 비로소 지난날 자신의 추천행위를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김안로가 그의 외손녀를 동궁비로 삼으려 하자 이를 질책하니, 이를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 틈이 생겼다.
1536년 이조판서가 되고, 이어서 공조판서를 역임하면서 김안로의 비행을 비판하자 김안로의 미움을 받아 이듬해 함경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곧 김안로와 그 일당이 축출되자, 우참찬에 올랐다. 인종이 즉위하여 대윤(大尹) 일파가 집권하면서 향배가 바르지 않다고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그뒤 복관되었으며, 시(詩)‧서(書)‧화(畵)에 능하였다. 시호는 문공(文恭)이다.
1507년(중종 2)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서 1513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에 보임되었다.
그뒤 호당(湖堂)에 들어가 사가독서하면서 문명을 날려, 지평‧정언‧장령‧홍문관교리‧집의 등의 청요직을 두루 지냈다. 언관을 역임하면서 국방문제의 중요성을 제기하였고, 국가기강의 확립을 위하여 심정(沈貞)을 비롯한 권간들의 횡포를 탄핵하였다.
1530년 대사간이 되어서는 형 심언경과 함께 김안로(金安老)의 등용을 적극 주장, 실현시켰다.
그러나 김안로가 조정에서 실권을 장악하면서 붕당을 조직하고 대옥(大獄)을 일으켜 사림들을 모해하자, 비로소 지난날 자신의 추천행위를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김안로가 그의 외손녀를 동궁비로 삼으려 하자 이를 질책하니, 이를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 틈이 생겼다.
1536년 이조판서가 되고, 이어서 공조판서를 역임하면서 김안로의 비행을 비판하자 김안로의 미움을 받아 이듬해 함경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곧 김안로와 그 일당이 축출되자, 우참찬에 올랐다. 인종이 즉위하여 대윤(大尹) 일파가 집권하면서 향배가 바르지 않다고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그뒤 복관되었으며, 시(詩)‧서(書)‧화(畵)에 능하였다. 시호는 문공(文恭)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仁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韓國系行譜
仁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韓國系行譜
[이미지]
[집필자]
최완기(崔完基)
명 : "언광(彦光)"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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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