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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주(朴漢柱)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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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천지(天支)
호(號)오졸재(迃拙齋)
생년1459(세조 5)
졸년1504(연산군 10)
시대조선전기
본관밀양(密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박돈인(朴敦仁)
저서『오졸재집』

[상세내용]

박한주(朴漢柱)
1459년(세조 5)∼1504년(연산군 10).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천지(天支), 호는 오졸재(迃拙齋)(주1)
기년편고를 참고하여 호 우졸재(迂拙齋)를 오졸재(迃拙齋)로 수정함.
.

박돈인(朴敦仁)의 아들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3년(성종 14) 생원시‧진사시에 합격하고 1485년 문과별시(文科別試)에 급제하였다. 전생서직장(典牲署直長)에 제수된 뒤 한성부참군사헌부감찰사간원정언성균관전적 등을 지내고 부모의 봉양을 위하여 자진해서 창녕현감으로 나왔다.

이때 백성들을 지성으로 보살피고 교화시켜 임금이 비단과 교서(敎書)로서 포상, 가자(加資)하였다. 임기를 마치고 다시 내직으로 들어가 종부시주부를 거쳐 1497년(연산군 3) 사간원헌납이 되었다.

이때 연산군의 실덕(失德)을 직간(直諫)하였고 또 임사홍(任士洪) 등의 간악함을 탄핵하는 차자(箚子)를 올렸다. 연산군의 횡포가 점차 심해지자 외직을 청하여 평해군수예천군수 등을 지냈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도(門徒)로 붕당을 지어 국정을 비방한다는 죄명으로 장(杖) 80대에 벽동(碧潼)으로 유배되었다.

1500년 평안도로 이배되었는데, 이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처형당하였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었고, 1517년 김정(金淨)조광조(趙光祖) 등의 계(啓)에 의하여 도승지 겸 예문관직제학이 추증되었다.

밀양 예림서원(禮林書院), 함안 덕암서원(德巖書院), 대구 남강서원(南岡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오졸재집』이 있다.

[참고문헌]


[집필자]

조준하(趙駿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2-06-18기년편고를 참고하여 호를 수정함.[수정자: 이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