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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근(愼守勤)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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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근중(勤仲)
호(號)소한당(所閒堂)
시호(諡號)신도(信度)
생년1450(세종 32)
졸년1506(중종 1)
시대조선전기
본관거창(居昌)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신승선(愼承善)
외조부임영대군(臨瀛大君)

[관련정보]

[상세내용]

신수근(愼守勤)
1450년(세종 32)∼1506년(중종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근중(勤仲), 호는 소한당(所閒堂).

부친은 영의정이자 거창부원군신승선(愼承善)이며, 모친은 임영대군(臨瀛大君)의 딸이다. 연산군의 처남이며, 중종의 장인이다.

1484년(성종 15) 음보(蔭補)로 장령에 기용되고, 1492년 우부승지로 승직됨에 이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호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495년(연산군 1)에 도승지가 되고, 이해에 선위사(宣慰使)가 되어 평안도를 순무하였다.

그뒤 이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이 되었다가 곧 파직되었다.

1504년에 다시 돈녕부첨정(敦寧府僉正)에 기용되고, 이듬해 우의정이 되어 등극사(登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6년 좌의정으로 있을 때에 박원종(朴元宗) 등이 장차 연산군을 폐하고 진성대군(晉成大君: 중종)을 임금으로 추대할 뜻을 품고 연산군의 처남이자, 진성대군의 장인인 그에게 넌지시 의사를 떠보기 위하여 누이와 딸 중 그 어느 편이 더 중하냐고 물어보자,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서면서 임금은 비록 포악하나 총명한 세자를 믿고 살겠다고 하였다.

박원종 등이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음을 알고 중종반정 때에 맨 먼저 역사인 신윤무(辛允武)이심(李莐) 등을 보내어 수각교(水閣橋)에서 그를 살해하였다. 그때 그의 시종(侍從)도 몸으로 막다가 함께 죽음을 당하였고, 그의 아우인 유수 신수겸(愼守謙)판서 신수영(愼守英)도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

반정으로 임금이 된 중종신수근의 딸을 왕비로 책봉하였으나 뒷날의 화를 두렵게 여긴 박원종 등에 의하여 폐출되었다. 인종 때 관작이 회복되었다. 시호는 신도(信度)이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성명 : "신수근(慎守勤)"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紀年便攷v10子光素啣宗直㷊詩事子光嘗遊咸陽作詩鏤板揭壁金宗直之守是邑也撤而去之即大喜與盧思慎尹弼啇䓁上變惟都承旨慎守勤掌出納主命拿馹孫鞫於修文堂七月下傳旨曰金宗直草茅賤臣成宗擢寘經筵久在侍從以至刑判今其弟子金馹孫所修史
紀年便攷v10妃成宗后曰此乃父王後宫何至是耶主以頭撞大妃王軆大妃遂不言主仍肆行誅殺搢紳清流罕得免焉皆士洪挾私隂導之慎守勤兄弟盤據內外具壽永者永膺大君之婿冨於財以滛巧貨賂得寵此數人表裏為惡生貟黃允獻之妾有姿色善伽倻琴壽永奪
紀年便攷v10慎守勤承善子臨瀛大君外孫權擥婿字敬之一勤仲號所閑堂䕃仕歴都承旨吏判䝺成燕山戊午與李克墩柳子光䝺成士禍丙寅拜
紀年便攷v10慎守勤
紀年便攷v10義前夕會于訓鍊院部分將士夜三鼓陣昌德宫洞口領議政柳洵右議政金壽童来會百官軍民聞風争赴遂遣勇士推殺慎守勤守英任士洪䓁斬嬖人田同金孝孫姜凝沈今孫䓁於軍前開獄門釋囚悉令赴軍天明進軍闕外留柳子光李永男金壽卿柳涇
紀年便攷v10窺也乃聯名抗䟽曰故妃慎民當靖國之初朴元宗成希顏䓁旣除慎守勤則妃乃其出也殺其父立其朝慮有他日之患曲為自全之計謀廢黜之無故而又無名也慎氏自殿下潜龍之初載成好逑及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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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