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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침(安琛)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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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진(子珍)
호(號)죽제(竹齊)
시호(諡號)공평(恭平)
생년1445(세종 27)
졸년1515(중종 10)
시대조선전기
본관순흥(順興)
활동분야문신 > 문신
안지귀(安知歸)

[상세내용]

안침(安琛)
1445년(세종 27)∼1515년(중종 1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자진(子珍), 호는 죽창(竹窓)죽제(竹齊). 부윤 안지귀(安知歸)의 아들이다.

1462년(세조 8) 중형 안선(安璿)과 함께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다.

1466년 왕이 강원도에 행차하여 시행한 고성별시문과(高城別試文科)에 2등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의정부사록사헌부감찰을 지냈으며, 1471년(성종 2)신설된 예문관에 당대의 명사로 뽑혀 등용되었다.

이어서 부수찬정언이조정랑예문관교리응교장령 등을 거쳐, 1481년 성균관사성이 되었다. 한때 임사홍(任士洪)의 간사함을 폭로하였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되었다가, 임사홍이 물러난 뒤에 다시 등용되어 군기시정(軍器寺正)부제학동부승지우승지를 역임하고, 1487년 양주목사로 나아갔다가 1493년 이조참의를 거쳐, 지중추부사로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인 1494년 대사성을 거쳐, 이조참판으로 부총관을 겸하고 이어서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가 되어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498년(연산군 4)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한성부우윤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500년 경상도병마절도사로 나갔다가 1502년 호조참판 겸 예문관제학이 되었고, 1506년 평안도관찰사로 있다가 중종반정으로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514년(중종 9) 특별히 공조판서에 발탁되었다가 바로 병사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필법은 송설체(松雪體)로서 해서에 뛰어났다. 영의정 유순(柳洵)이손(李蓀) 등과 교우가 깊었다. 그의 필적으로는 광주의 「밀성군침비(密城君琛碑)」‧「좌찬성한계희비(左贊成韓繼禧碑)」와 시흥의 「월성군이철견비(月城君李鐵堅碑)」가 있다. 시호는 공평(恭平)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燕山君日記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朝鮮金石總覽
槿域書畵徵(吳世昌, 啓明俱樂部, 1928)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