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굉(李浤)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74AD49FFFFB1441X0 |
자(字) | 심원(深源) |
호(號) | 귀래정(歸來亭) |
생년 | 1440(세종 22) |
졸년 | 1516(중종 11)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고성(固城)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증(李增) |
조부 | 이원(李原) |
[상세내용]
이굉(李浤)
1440년(세종 22)∼1516년(중종 1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심원(深源), 호는 귀래정(歸來亭). 좌의정 이원(李原)의 손자이며, 현감 이증(李增)의 아들이다.
1464년(세조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480년(성종 1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이 된 뒤 군위현감‧세자시강원문학‧사간원헌납‧사헌부지평‧공조정랑‧청도군수‧사재감첨정‧봉상시부정 등을 지냈다.
1500년(연산군 6)에는 사헌부집의를 거쳐 예빈시정‧승문원판교‧상주목사를 역임한 뒤, 1504년 갑자사화에 김굉필(金宏弼) 일당으로 몰려 관직이 삭탈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 뒤 다시 기용되어 충청도병마절도사‧경상좌도수군절도사‧개성부유수 등을 지냈고, 1513년(중종 8)에 나이가 많아 사직한 뒤 고향인 안동에 내려가 귀래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풍류생활을 하였다.
시문에 능하였다.
1464년(세조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480년(성종 1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이 된 뒤 군위현감‧세자시강원문학‧사간원헌납‧사헌부지평‧공조정랑‧청도군수‧사재감첨정‧봉상시부정 등을 지냈다.
1500년(연산군 6)에는 사헌부집의를 거쳐 예빈시정‧승문원판교‧상주목사를 역임한 뒤, 1504년 갑자사화에 김굉필(金宏弼) 일당으로 몰려 관직이 삭탈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 뒤 다시 기용되어 충청도병마절도사‧경상좌도수군절도사‧개성부유수 등을 지냈고, 1513년(중종 8)에 나이가 많아 사직한 뒤 고향인 안동에 내려가 귀래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풍류생활을 하였다.
시문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國朝人物考
燕山君日記
國朝人物考
[집필자]
원영환(元永煥)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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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