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회(姜文會)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C15BB38D68CB1433X0 |
자(字) | 우인(友仁) |
호(號) | 소요당(逍遙堂) |
생년 | 1433(세종 15) |
졸년 | 1499(연산군 5)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진주(晉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강행(姜行) |
저서 | 『소요당기』 |

[상세내용]
강문회(姜文會)
1433년(세종 15)∼1499년(연산군 5).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우인(友仁), 호는 소요당(逍遙堂).
부친은 광양현감(光陽縣監) 강행(姜行)이다.
독학으로 학문을 하였다. 명망이 높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오자 그들을 가르쳤다. 1469년(예종 1) 추장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에 제수된 이후, 성균관으로 자리를 옮겨 후진양성에 힘썼다. 성종 때에는 학덕으로 이름이 높아지면서 주백손(朱伯孫)‧김극검(金克儉)‧정구년(鄭龜年)‧주계정(朱繼程) 등과 더불어 사표(師表)로 추앙되었다.
그러나 연산군이 즉위하여 폭정이 계속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단성(丹城)의 별장으로 낙향하였다. 그리하여 산수간을 소요하면서 여생을 즐기는 한편 후진교육에 힘쓰니, 문하에는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어득강(魚得江)‧김수경(金守敬)‧이적(李迪) 등은 모두 그의 문인이었다.
천성이 순후하고, 시문에 능하였다. 저서로는 『소요당기』가 있다.
부친은 광양현감(光陽縣監) 강행(姜行)이다.
독학으로 학문을 하였다. 명망이 높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오자 그들을 가르쳤다. 1469년(예종 1) 추장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에 제수된 이후, 성균관으로 자리를 옮겨 후진양성에 힘썼다. 성종 때에는 학덕으로 이름이 높아지면서 주백손(朱伯孫)‧김극검(金克儉)‧정구년(鄭龜年)‧주계정(朱繼程) 등과 더불어 사표(師表)로 추앙되었다.
그러나 연산군이 즉위하여 폭정이 계속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단성(丹城)의 별장으로 낙향하였다. 그리하여 산수간을 소요하면서 여생을 즐기는 한편 후진교육에 힘쓰니, 문하에는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어득강(魚得江)‧김수경(金守敬)‧이적(李迪) 등은 모두 그의 문인이었다.
천성이 순후하고, 시문에 능하였다. 저서로는 『소요당기』가 있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최완기(崔完基)
대표명 | 강문회(姜文會) |
자 | 우인(友仁) |
자 : "우인(友仁)"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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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