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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희(韓繼禧)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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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순(子順)
시호(諡號)문정(文靖)
생년1423(세종 5)
졸년1482(성종 13)
시대조선전기
본관청주(淸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한혜(韓惠)
조부한상경(韓尙敬)
외조부성달생(成達生)
공신호추충정난익대공신(推忠定難翼戴功臣)
공신호순성명량경제좌리공신(純誠明亮經濟佐理功臣)

[상세내용]

한계희(韓繼禧)
1423년(세종 5)∼1482년(성종 13).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순(子順).

개국공신 한상경(韓尙敬)의 손자로, 함길도관찰출척사 한혜(韓惠)의 아들이며, 모친은 성달생(成達生)의 딸이다.

1441년(세종 23) 진사시에 합격하고, 1447년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에 보임되었다가 곧 집현전 정자로 뽑혔다. 이어 부수찬지제교로서 경연관(經筵官)을 상겸하고 부교리에 이르렀다.

세조가 즉위한 뒤로 신임을 두터이 받아 1455년(세조 즉위) 세자우문학, 이듬해 좌필선집의, 1457년 예문관직제학지제교 겸 춘추관기주관으로 문한의 직을 역임하고, 이어 세자우보덕(世子右輔德)을 겸하였다.

이듬해 좌보덕병조지사(兵曹知事)참의, 1460년 우승지, 1467년 좌승지공조참판중추원부사, 1468년 이조참판으로서 세자우부빈객(世子右副賓客)을 겸하고, 이듬해 인순부윤(仁順府尹)을 거쳐 1465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1467년 중추부사, 이듬해 세조가 병환이 심할 때 조약(調藥)의 임무를 맡았고, 죽기 전날에는 세조의 지시로 대보(大寶)와 곤면(袞冕)을 세자에게 전수하는 일을 주관하였다.

1469년 예종이 즉위하자 남이(南怡)를 제거한 공으로 추충정난익대공신(推忠定難翼戴功臣) 3등에 책록되고 서원군(西原君)에 봉하여졌다.

이듬해 성종이 즉위하여서는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하고, 1471년(성종 2) 순성명량경제좌리공신(純誠明亮經濟佐理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며, 1478년 좌찬성에 이르렀다.

그의 집안은 조선 초기의 명문거족으로서 그의 벼슬길에 가문의 배경이 큰 힘이 되기도 하였지만, 세종집현전 장서각(藏書閣)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박람강기(博覽强記)로 쌓은 학식이 큰 바탕이 되었다. 학식과 단정한 성품으로 주위로부터 추중(推重)을 받았으며, 특히 서거정(徐居正)과 교분이 두터웠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참고문헌]

端宗實錄
世祖實錄
睿宗實錄
成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태진(李泰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