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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척(鄭陟)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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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명지(明之)
호(號)창재(暢齋)
시호(諡號)공대(恭戴)
생년1390(공양왕 2)
졸년1475(성종 6)
시대조선전기
본관진양(晉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정설(鄭舌)
진주 강씨(晉州姜氏)
외조부강우(姜祐)

[상세내용]

정척(鄭陟)
1390년(공양왕 2)∼1475년(성종 6).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명지(明之), 호는 정암(整菴)창재(暢齋).

부친은 증호조판서 정설(鄭舌)이며, 모친은 진주 강씨(晉州姜氏)산원(散員) 강우(姜祐)의 딸이다.

1408년(태종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1414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정자가 되었다.

1425년(세종 7) 사온서주부 겸 승문원박사가 되고, 1427년 감찰이 되었다.

그뒤 예조정랑으로 검상을 겸직하였으며, 이어서 사인전농시소윤(典農寺少尹)으로 있을 때 1434년 훈시(訓試)에 급제하여 지승문원사가 되었다.

1444년 첨지중추원사를 거쳐 공조호조예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그뒤 경창부윤(慶昌府尹)으로 나갔다가, 1449년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예조참판이 되었으며, 그때 양계의 지도를 만들어 바쳤다.

1454년(단종 2) 판한성부사로 있다가 1455년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 이해에 세조가 즉위하자 지중추원사가 되었다.

1463년(세조 9) 양성지(梁誠之)와 함께 『동국지도』를 만들어 바쳤고, 그해에 부사과가 되었다.

해서(楷書)와 전서(篆書)에 뛰어나 나라의 새보(璽寶)와 관인(官印)의 글씨를 맡아서 썼다.

또한, 전고(典故)에도 조예가 깊어 많은 의제(儀制)도 찬하였다. 시호는 공대(恭戴)이다.

[참고문헌]

世祖實錄
端宗實錄
成宗實錄
新增東國輿地勝覽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