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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홍강(禹洪康)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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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諡號)안정(安靖)
생년1357(공민왕 6)
졸년1423(세종 5)
시대조선전기
본관단양(丹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우현보(禹玄寶)
공신호정난원종공신(靖難原從功臣)

[상세내용]

우홍강(禹洪康)
1357년(공민왕 6)∼1423년(세종 5). 고려말‧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단양백(丹陽伯) 우현보(禹玄寶)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음덕으로 벼슬길에 올라 1378년(우왕 4) 사헌부 규정(糾正)재직중에 문과에 급제하고 중서문하성우정언에 제수되었다.

그뒤 삼사판관전리사정랑(典理司正郞)성균관사예전교시부령(典校寺副令)전공사총랑(典工司摠郞)강원도안렴사(江原道按廉使)친어군대호군(親禦軍大護軍)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392년(공양왕 4) 이성계(李成桂)일파에 의한 정몽주(鄭夢周) 등 정적제거에 연루되어 관직을 삭탈당하고 원지에 유배되었다가 곧 방면되었다.

같은해 7월에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정도전(鄭道傳) 등에 의한 고려 구신 제거책에 의하여 재차 논죄되면서 직첩을 몰수당하고 원지에 장류(杖流)되었다가 다음해에 방면되고, 1398년(태조 7) 직첩이 환급되었다.

1401년(태종 1) 경 우씨일문이 1399년(정종 1) 이방간(李芳幹)의 난에 끼친 공로에 대한 배려로 사간원좌사간대부에 발탁되고, 이어 통례문판사(通禮門判事)충주목사청주목사예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410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에는 이조참의로서 세공종마(歲貢種馬)의 진헌을 위한 사신이 되어 명나라를 내왕한 뒤 귀국과 함께 공안부윤(恭安府尹)에 제수되었다가 같은해 윤12월에 전년의 이조참의 재직시에 전서(典書) 강단봉(姜丹鳳)의 과전(科田)을 탈취하고자 한 사건으로 파직되었다.

1412년 태종에 의한 우씨일문의 이방간의 난에 끼친 공로의 재평가로 특히 정난원종공신(靖難原從功臣)에 추록, 곧 가선대부에 오르면서 한성부윤에 복직되었다.

1413년에 강원도관찰사로 파견되고, 같은해 임지를 벗어나 충청도관찰사 이안우(李安愚) 등과 회음(會飲)한 일로 다시 파직되었다가 곧 안동대도호부사에 복직되었으며, 홍주목사를 거쳐 1421년(세종 3) 자헌대부에 승진하면서 개성유후사유후(開城留後司留後)를 지내다가 병으로 사직한 뒤 죽었다.

시호는 안정(安靖)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太祖實錄
太宗實錄
世宗實錄

[집필자]

한충희(韓忠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