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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국대장공주(薊國大長公主)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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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보탑실련(寶塔實憐)
생년?(미상)
졸년1315(충숙왕 2)
시대고려후기
활동분야왕실 > 비빈
감마랄(甘麻剌)

[상세내용]

계국대장공주(薊國大長公主)
미상∼1315년(충숙왕 2). 고려 충선왕의 비(妃). 이름은 보탑실련(寶塔實憐).

원나라진왕(晉王) 감마랄(甘麻剌)의 딸로서, 1296년(충렬왕 22) 충선왕이 세자로 원나라에 있을 때 혼인하여 세자빈이 되었고, 1298년 고려에 와서 그해 왕비가 되었다. 공주의 궁을 중화(中和), 부(府)를 숭경(崇敬)이라 하였다.

투기가 심하여 왕이 자기를 멀리하고 고려여자인 조인규(趙仁規)의 딸 조비(趙妃)를 사랑한다 하여, 이를 원나라 황실에 몰래 알려 그 가족을 모두 가두고 국문하였으며, 조인규조비원나라로 잡아가게 하였다. 이해 충렬왕이 복위하여 충선왕과 함께 원나라로 갔다.

1301년 충렬왕민훤(閔萱)을 보내어 공주를 개가시킬 것을 청하려 하였으나, 민훤이 감히 올리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뒤 충렬왕의 총신 송린(宋璘)석주(石胄)왕유소(王維紹) 등이 모함하여 부자 사이를 이간시키는 한편, 공주를 서흥후(瑞興侯) 왕전(王琠)에게 개가시키려고 하였다.

1308년 원나라성종(成宗)이 죽고 무종(武宗)이 즉위하게 되자, 무종 즉위에 공이 있는 충선왕의 세력이 커지게 되었다. 그리고 고려 본국에서도 최유엄(崔有渰)의 간언으로 충렬왕 부자의 불화가 풀어짐에 따라 공주의 개가문제는 가라앉게 되었으며, 왕유소송인송방영(宋邦英) 등의 일파와 서흥후 왕전이 모두 살해되었다.

1310년(충선왕 2) 한국장공주(韓國長公主)에 봉해졌으며, 1313년 왕과 함께 원나라에서 돌아왔다.

1315년 원나라에서 죽었으며, 1317년 원나라에서 계국대장공주(薊國大長公主)로 추봉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박옥걸(朴玉杰)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