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훤(閔萱)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BBFCD6E4FFFFD1310X0 |
시호(諡號) | 양경(良敬) |
생년 | ?(미상) |
졸년 | 1310(충선왕 2)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여흥(驪興)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4대조 | 민영모(閔令謨) |
[상세내용]
민훤(閔萱)
미상∼1310년(충선왕 2).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평장사(平章事) 민영모(閔令謨)의 4세손이다.
1280년(충렬왕 6) 좌랑(佐郞)으로서 시사(侍史)가 되고, 다음해 경상도 안렴사(按廉使)가 되었다.
1290년 위위부윤(衛尉府尹)에서 전라도 지휘사(指揮使)가 되고, 다음해 승지의 자리가 비자 이덕손(李德孫)‧권의(權宜) 등과 이 자리를 다투다가, 왕명으로 제비〔籌〕를 뽑은 결과 당첨되어 우승지가 되었다.
1300년 도첨의참리 지도첨의사사(都僉宜參理知都僉議司事)가 되고, 이듬해 원나라에 들어가 충선왕의 비(妃) 보탑실련공주(寶塔實憐公主)의 개가(改嫁)를 요청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그 표(表)를 올리지 않고 귀국하였다.
1303년 다시 참리(參理)에 임명되고, 다음해 자의도첨의찬성사(咨議都僉議贊成事)가 된 뒤 치사(致仕)하였으나, 충선왕이 즉위하자 공주의 개가를 요청하는 표를 가지고 원나라에 들어간 죄로 유배되었다.
시호는 양경(良敬)이다.
평장사(平章事) 민영모(閔令謨)의 4세손이다.
1280년(충렬왕 6) 좌랑(佐郞)으로서 시사(侍史)가 되고, 다음해 경상도 안렴사(按廉使)가 되었다.
1290년 위위부윤(衛尉府尹)에서 전라도 지휘사(指揮使)가 되고, 다음해 승지의 자리가 비자 이덕손(李德孫)‧권의(權宜) 등과 이 자리를 다투다가, 왕명으로 제비〔籌〕를 뽑은 결과 당첨되어 우승지가 되었다.
1300년 도첨의참리 지도첨의사사(都僉宜參理知都僉議司事)가 되고, 이듬해 원나라에 들어가 충선왕의 비(妃) 보탑실련공주(寶塔實憐公主)의 개가(改嫁)를 요청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그 표(表)를 올리지 않고 귀국하였다.
1303년 다시 참리(參理)에 임명되고, 다음해 자의도첨의찬성사(咨議都僉議贊成事)가 된 뒤 치사(致仕)하였으나, 충선왕이 즉위하자 공주의 개가를 요청하는 표를 가지고 원나라에 들어간 죄로 유배되었다.
시호는 양경(良敬)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진성규(秦星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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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