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소(康允紹)
[상세내용]
강윤소(康允紹)
생졸년 미상. 고려 시대의 장군.
원래 신안공(新安公) 왕전(王佺)의 가노(家奴)로 처음에 환자(宦者)가 되었는데, 몽고어 해독을 잘하였다. 교활하고 아첨을 잘하며, 원종의 총애를 받았다.
낭장에 올라 여러 번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공이 있어 장군으로 승진되었으며, 1268년(원종 9) 김준(金俊)의 무리를 죽일 때 평소 가까웠던 임연(林衍)을 도운 공으로 일등공신이 되고, 대장군에 올랐다.
1269년 임연이 왕의 폐립(廢立)을 꾀하여 안경공(安慶公) 왕창(王淐)을 세우고 원종을 용암궁(龍巖宮)에 유폐시킬 때, 이미 왕을 배반했으나 원종이 곧 복위하여 원나라에 가게 되자, 임연의 심복이 되어 스스로 왕을 호종, 돌아와 상장군에 올랐다.
세자 심(諶)이 고관의 자제를 이끌고 원나라에 갈 때 왕의 폐립사건 때문에 뽑히지 않았으나 자의로 원나라에 가서 개체(開剃: 몽고머리)하고, 귀국한 뒤에는 스스로 원나라의 사신처럼 행세하며, 왕을 보고도 절을 하지 않았다. 왕이 노하였으나 제어할 수가 없었고, 유사(有司)도 감히 힐난하지 못하였다.
원나라에 있을 때 홍다구(洪茶丘)에게 아부하여, 고려에는 많은 군량의 저축이 있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원나라가 고려에 사신을 보내 군량을 독촉하게 하였다.
1275년(충렬왕 1) 군부판서(軍簿判書)에 올랐는데 그 신분이 천예출신이라 하여 감찰사(監察司)의 탄핵으로 면직되었으나, 곧 응양군상장군(鷹揚軍上將軍)이 되었고, 이어 밀직부사(密直副司)에 올랐다.
1279년 대장군 김자정(金子廷)과 함께 사패(賜牌)를 사칭하여 많은 민전을 빼앗다가 발각되어 신흥창(新興倉)에 몰수당하였으며, 1283년 판삼사사(判三司事)로 물러났다.
원래 신안공(新安公) 왕전(王佺)의 가노(家奴)로 처음에 환자(宦者)가 되었는데, 몽고어 해독을 잘하였다. 교활하고 아첨을 잘하며, 원종의 총애를 받았다.
낭장에 올라 여러 번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공이 있어 장군으로 승진되었으며, 1268년(원종 9) 김준(金俊)의 무리를 죽일 때 평소 가까웠던 임연(林衍)을 도운 공으로 일등공신이 되고, 대장군에 올랐다.
1269년 임연이 왕의 폐립(廢立)을 꾀하여 안경공(安慶公) 왕창(王淐)을 세우고 원종을 용암궁(龍巖宮)에 유폐시킬 때, 이미 왕을 배반했으나 원종이 곧 복위하여 원나라에 가게 되자, 임연의 심복이 되어 스스로 왕을 호종, 돌아와 상장군에 올랐다.
세자 심(諶)이 고관의 자제를 이끌고 원나라에 갈 때 왕의 폐립사건 때문에 뽑히지 않았으나 자의로 원나라에 가서 개체(開剃: 몽고머리)하고, 귀국한 뒤에는 스스로 원나라의 사신처럼 행세하며, 왕을 보고도 절을 하지 않았다. 왕이 노하였으나 제어할 수가 없었고, 유사(有司)도 감히 힐난하지 못하였다.
원나라에 있을 때 홍다구(洪茶丘)에게 아부하여, 고려에는 많은 군량의 저축이 있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원나라가 고려에 사신을 보내 군량을 독촉하게 하였다.
1275년(충렬왕 1) 군부판서(軍簿判書)에 올랐는데 그 신분이 천예출신이라 하여 감찰사(監察司)의 탄핵으로 면직되었으나, 곧 응양군상장군(鷹揚軍上將軍)이 되었고, 이어 밀직부사(密直副司)에 올랐다.
1279년 대장군 김자정(金子廷)과 함께 사패(賜牌)를 사칭하여 많은 민전을 빼앗다가 발각되어 신흥창(新興倉)에 몰수당하였으며, 1283년 판삼사사(判三司事)로 물러났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박옥걸(朴玉杰)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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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