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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林衍)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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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임승주(林承柱)
시호(諡號)장렬(莊烈)
생년?(미상)
졸년1270(원종 11)
시대고려후기
본관진천(鎭川)
활동분야관료 > 권신
공신호위사공신(衛社功臣)

[상세내용]

임연(林衍)
미상∼1270년(원종 11). 고려의 권신. 본관은 진천(鎭川). 초명은 임승주(林承柱).

모친은 진주 주리(州吏)의 딸이다.

일찍이 대장군 송언상(宋彦祥)의 종이 되었다가 뒤에 고향에 돌아가 있었는데, 마침 몽고병이 침입해오자 고향사람들과 힘을 합쳐 이를 물리쳐 그 공으로 대정(隊正)에 임명되었다.

그뒤 김준(金俊)의 신임을 받아 권세를 부리다가 1258년(고종 45)에 유경(柳璥)김준 등과 공모하여 권신 최의(崔竩)를 죽이고 정권을 왕실에 복귀시킨 공으로 위사공신(衛社功臣)의 호를 받고 추밀원부사가 되었다.

1268년(원종 9)에 정권을 장악한 김준과 왕의 사이가 벌어진 것을 알고 환자(宦者) 강윤소(康允紹)최은(崔𤨒)김경(金鏡)과 함께 김준을 죽이고 그의 여러 아들과 그 무리들을 죽이거나 유배보내었다.

그뒤 김경최은의 세력이 커지게 되자 이들을 제거하고 어사대부(御史大夫) 장계열(張季烈)대장군 기온(奇蘊)을 섬에 유배보내었다.

이때 원나라와 화의가 진전되어 자신의 위치가 불안해지고 또 왕과의 사이도 벌어지자 삼별초와 육번도방(六番都房)을 거느리고 재추(宰樞)와 더불어 왕의 폐립을 논한 뒤 원종 대신 동생 안경공(安慶公) 왕창(王淐)을 옹립하고, 자신은 교정별감(敎定別監)이 되었다.

이때 마침 원나라에 갔던 세자가 돌아오다가 압록강에 이르러 이 소식을 듣고 연경으로 돌아가니, 이를 두려워하여 이장용(李藏用)절일사(節日使)원나라에 보내어 세자를 돌아오게 하였다. 장용연경에 이르러 왕의 폐립 전모를 상세히 진술하니, 원나라에서는 병부시랑 흑적(黑的) 등을 보내와 왕을 폐한 사실을 힐문하자 다시 원종을 복위시켰다.

다음해에 왕이 연경에 들어가니 왕의 폐립사실을 누설할까 두려워 아들 임유간(林惟幹)으로 하여금 호종하게 하였으나, 원제(元帝)가 직접 연경에 들어와서 진상을 해명하라 하였으므로 이를 근심하다가 죽었다.

아들 임유무(林惟茂)가 청하여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추증하였다. 시호는 장렬(莊烈)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이상선(李相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