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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용(李藏用)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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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이인기(李仁祺)
자(字)현보(顯甫)
시호(諡號)문진(文眞)
생년1201(신종 4)
졸년1272(원종 13)
시대고려후기
본관인천(仁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경(李儆)

[상세내용]

이장용(李藏用)
1201년(신종 4)∼1272년(원종 13). 고려의 문신‧학자. 본관은 인천(仁川). 초명은 인기(仁祺), 자는 현보(顯甫). 중서령(中書令) 이자연(李子淵)의 6대손이며, 추밀원사(樞密院使) 이경(李儆)의 아들이다.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서경사록(西京司錄)교서랑 겸 직사관(校書郞兼直史館)국자대사성 추밀원승지(國子大司成樞密院承旨)를 거쳐 1256년(고종 43)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1258년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역임하였다.

1260년(원종 1) 참지정사 수태위 감수국사 판호부사(參知政事守太尉監修國史判戶部事), 1262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가 되어 수태부 판병부사 태자태부(守太傅判兵部事太子太傅)를 겸하였다.

1264년에 왕이 몽고에 입조할 때 수행, 해동현인으로 칭송을 받아 명재상으로 이름을 높였다. 귀국 후 왕을 잘 수행한 공으로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에 오르고 경원군개국백(慶源郡開國伯)에 봉하여졌으며 태자태사(太子太師)가 더하여졌다.

1267년 몽고가 병부시랑 흑적(黑的) 등을 보내어 일본을 초유(招諭)하게 하는 것을 반대하여 관철시키고, 이해에 감수국사가 되어 동수국사(同修國史) 유경(柳璥), 수찬관 김구(金坵)허기(許琪) 등과 신종희종강종에 이르는 3대실록의 편찬을 시작하였다.

이듬해 문하시중에 오르고 1269년 절일사(節日使)로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여러 번 지공거(知貢擧)를 역임하였다.

1271년 임연(林衍)원종을 폐하려 할 때 이를 방지하지 못할 것을 알고 손위(遜位)할 것을 말한 일로 면직되어 서인(庶人)이 되었다.

경사(經史)에 밝고 음양(陰陽)‧의약(醫藥)‧율력(律曆)에 통달하였으며, 문장에 능하고 불서(佛書)도 깊이 연구하였다.

몽고와의 외교에 공을 세웠고, 일찍이 개경천도를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이승휴(李承休)를 천거하여 관직에 나아가게 하였다. 시호는 문진(文眞)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박성봉(朴性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