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神宗)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2E0C885FFFFB1144X0 |
이명(異名) | 민(旼) |
이명(異名) | 탁(晫) |
자(字) | 지화(至華) |
시호(諡號) | 정효(靖孝) |
생년 | 1144(인종 22) |
졸년 | 1204(신종 7) |
시대 | 고려중기 |
본관 | 개성(開城) |
활동분야 | 왕실 > 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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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 | 선정태후(宣靖太后) |
처부 | 김온(金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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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신종(神宗)
1144년(인종 22)∼1204년(신종 7). 고려의 제20대왕. 재위 1197∼1204년. 개성왕씨(開城王氏). 이름은 탁(晫), 초명은 민(旼), 자는 지화(至華). 인종의 다섯째 아들이며 명종의 동모제이고, 비(妃)는 강릉공(江陵公) 김온(金溫)의 딸인 선정태후(宣靖太后)이다.
평량공(平凉公)에 봉해진 뒤 최충헌(崔忠獻)형제가 명종을 폐하고 왕으로 추대하여 대관전(大觀殿)에서 즉위하였다.
1198년(신종 1) 산천비보도감(山川裨補都監)을 두었고, 관서(關西)민가의 안대(安碓: 방앗간을 차림.)를 금하였다. 그해 사노(私奴) 만적(萬積)의 난이 일어난 것을 비롯하여 이듬해에는 명주(溟州: 지금의 江陵)‧동경(東京: 지금의 慶州), 뒤이어 진주(晉州)‧전주‧합주(陜州: 지금의 陜川) 등지에서 민란이 계속 일어났다.
1199년에 최충헌이 문무관의 전주(銓注: 人事行政)를 도맡아 행하였는데, 이로부터 모든 실권은 최충헌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해 수양장도감(輸養帳都監)과 오가도감(五家都監)을 두었다.
1202년에 탐라(耽羅: 지금의 濟州道)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소부소감(少府少監) 장윤문(張允文)과 중랑장(中郞將) 이당적(李唐積)을 안무사(安撫使)로 보내어 평정하였다.
1204년 등창이 심하여 태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시호는 정효(靖孝)이며, 능은 양릉陽陵)이다.
평량공(平凉公)에 봉해진 뒤 최충헌(崔忠獻)형제가 명종을 폐하고 왕으로 추대하여 대관전(大觀殿)에서 즉위하였다.
1198년(신종 1) 산천비보도감(山川裨補都監)을 두었고, 관서(關西)민가의 안대(安碓: 방앗간을 차림.)를 금하였다. 그해 사노(私奴) 만적(萬積)의 난이 일어난 것을 비롯하여 이듬해에는 명주(溟州: 지금의 江陵)‧동경(東京: 지금의 慶州), 뒤이어 진주(晉州)‧전주‧합주(陜州: 지금의 陜川) 등지에서 민란이 계속 일어났다.
1199년에 최충헌이 문무관의 전주(銓注: 人事行政)를 도맡아 행하였는데, 이로부터 모든 실권은 최충헌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해 수양장도감(輸養帳都監)과 오가도감(五家都監)을 두었다.
1202년에 탐라(耽羅: 지금의 濟州道)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소부소감(少府少監) 장윤문(張允文)과 중랑장(中郞將) 이당적(李唐積)을 안무사(安撫使)로 보내어 평정하였다.
1204년 등창이 심하여 태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시호는 정효(靖孝)이며, 능은 양릉陽陵)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민병하(閔丙河)
묘호 : "신종(神宗)"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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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