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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돈중(金敦中)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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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1170(의종 24)
시대고려중기
본관경주(慶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부식(金富軾)

[상세내용]

김돈중(金敦中)
미상∼1170년(의종 24). 고려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부친은 김부식(金富軾)이다.

1144년(인종 22) 문과에 급제, 내시직에 임명되었다. 견룡대정(牽龍隊正) 정중부(鄭仲夫)의 수염을 촛불로 태운 일이 있었는데, 김부식이 도리어 정중부를 나무라므로 그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의종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가 되었으나 환관 정함(鄭諴)합문지후(閤門祗候)에 임명하는 것을 반대하여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으로 좌천되었다가 시랑에 옮겨졌다.

그뒤 김부식이 세운 관란사(觀瀾寺)를 중수하여 아우인 김돈시(金敦時)와 함께 왕의 복을 비는 절로 삼음으로써 의종의 환심을 샀다.

1167년(의종 21) 좌승선(左承宣)이 되었는데, 의종봉은사(奉恩寺)에서 연등행사를 마치고 환궁할 때 그의 말이 놀라 한 군사의 화살통에 부딪쳐 화살이 의종의 수레에 떨어진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유시사건(流矢事件)으로 군인들이 죄없이 귀양가게 되어 김돈중에게 더욱 원한을 품게 되었다.

1170년 정중부보현원(普賢院)에서 난을 일으켜 많은 문신들이 살해당하자, 도망하여 감악산(紺嶽山)에 숨었으나 종자(從者)의 밀고로 잡혀 살해되었다.

그는 죽으면서 유시의 화에 죄없는 사람이 많이 걸렸으니 지금 나의 죽음은 마땅한 것이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박성봉(朴性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