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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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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479(소지마립간 1)
시대신라
본관경주(慶州)
활동분야왕실 > 왕
처부미사흔(未斯欣)

[상세내용]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미상∼479년(소지마립간 1). 신라 제20대 왕. 재위 458∼479년. 성은 김씨. 눌지마립간의 맏아들이다. 모친은 실성이사금의 딸 김씨이고, 왕비는 내물마립간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의 딸 김씨로 461년(자비마립간 4)에 맞아들였다.

눌지마립간대에 마련된 왕위의 부자상속제에 따라 즉위함으로써 보다 강화된 왕권을 보여주었다.

당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종래의 족제적(族制的)성격이 강하게 남아 있는 6부(部)를 개편하는 일이 긴요하였는데, 469년에는 왕경(王京)인 경주를 지역적으로 구분하여 방리명(坊里名)을 확정함으로써 왕경의 족제적 성격을 탈피하고 행정적 성격을 강하게 하였다.

국내의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대비하여 눌지마립간 때에 체결되었던 백제와의 공수동맹(攻守同盟)을 보다 강화하였다.

이 공수동맹에 입각하여 474년에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한 백제개로왕이 아들 문주(文周)신라에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자 이에 군사를 파견하여 백제를 구원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구원병이 이르기도 전에 백제의 한산성(漢山城)은 함락되고 개로왕은 전사하였다.

이와같이 고구려의 군사적 압력이 증대되자 자비마립간은 백성을 징발하여 니하(泥河: 지금의 江陵 南大川)삼년산성(三年山城: 지금의 報恩)모로성(芼老城)일모성(一牟城)사시성(沙尸城)광석성(廣石城)답달성(沓達城)구례성(仇禮城)좌라성(坐羅城) 등 일선지대의 요새지에 새로이 산성을 축조함으로써 고구려의 남하에 대한 방비와 아울러 이미 확보한 점령지의 효과적인 통치를 꾀하였다.

한편 몇차례에 걸친 왜(倭)의 침입이 있었는데 모두 효과적으로 격퇴하였을 뿐만 아니라 463년에는 삽랑성(歃良城: 지금의 梁山)을 침범하고 물러가는 왜병을 크게 격파하였다.

한편, 왕은 연해지방의 두 곳에 성을 쌓아 왜인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467년에는 전함을 수리하여 이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집필자]

김영하(金瑛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