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金德基)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B355AE30B1654X0 |
자(字) | 재이(載而) |
생년 | 1654(효종 5) |
졸년 | 1719(숙종 4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선산(善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시헌(金時獻) |
외조부 | 황도형(黃道亨)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덕기(金德基)
1654년(효종 5)∼1719년(숙종 4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재이(載而).
부친은 김시헌(金時獻)이며, 모친은 황도형(黃道亨)의 딸이다.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사간원에 들어갔다.
1689년 오두인(吳斗寅)‧박태보(朴泰輔) 등과 함께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출의 부당성에 대한 상소를 올린 바 있다.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몰려나고 서인이 정권을 잡자, 사헌부에 발탁되어 우의정 최석정(崔錫鼎)의 삭탈관작을 청하고 훈련대장 신여철(申汝哲)의 추고를 청하는 등 강경한 언론을 많이 행사하여 여러 번 체직당하기도 하였다.
그뒤 동래부사‧황해도관찰사 등 외직을 거쳐 오랫동안 승지에 임용되었으며 관직이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재능이 있고 근면했으나 일을 처리하는 데 가혹한 점이 있어 주위의 원망을 사기도 하였다.
부친은 김시헌(金時獻)이며, 모친은 황도형(黃道亨)의 딸이다.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사간원에 들어갔다.
1689년 오두인(吳斗寅)‧박태보(朴泰輔) 등과 함께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출의 부당성에 대한 상소를 올린 바 있다.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몰려나고 서인이 정권을 잡자, 사헌부에 발탁되어 우의정 최석정(崔錫鼎)의 삭탈관작을 청하고 훈련대장 신여철(申汝哲)의 추고를 청하는 등 강경한 언론을 많이 행사하여 여러 번 체직당하기도 하였다.
그뒤 동래부사‧황해도관찰사 등 외직을 거쳐 오랫동안 승지에 임용되었으며 관직이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재능이 있고 근면했으나 일을 처리하는 데 가혹한 점이 있어 주위의 원망을 사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집필자]
우인수(禹仁秀)
명 : "덕기(德基)"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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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