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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규(李堂揆)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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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기중(基仲)
호(號)퇴촌(退村)
시호(諡號)문경(文敬)
생년1625(인조 3)
졸년1684(숙종 10)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성구(李聖求)
안동권씨(安東權氏)
외조부권흔(權昕)

[상세내용]

이당규(李堂揆)
1625년(인조 3)∼1684년(숙종 1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기중(基仲), 호는 퇴촌(退村). 영의정 이성구(李聖求)의 아들이며, 모친은 안동권씨(安東權氏)한림사 권흔(權昕)의 딸이다.

1650년(효종 1)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같은해 동료들을 이끌고 당론문제로 상소하자 왕이 비지(批旨)를 내려 학업에만 열심히 하라고 당부하였다. 곧 문음으로 입사하여 여러 관직을 거친 뒤 1668년(현종 9) 의성현령이 되었다. 이해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2년 홍문관수찬이 된 이래 정언이조좌랑이조정랑을 거쳐 국장도감의 낭청이 되었다. 다시 겸문학을 거쳐 1674년 동부승지에 발탁되었다.

그뒤 이조참의승지대사간부교리대사성대사헌이조참판 등의 청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숙종초의 남인정권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다.

1677년(숙종 3) 대제학으로 백골징포(白骨徵布)‧황구첨정(黃口簽丁)과 같은 군포(軍布)의 폐단과 서북지방의 전세(田稅) 문제에 대하여 과감한 개혁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뒤 이조참판대사간부제학을 역임하고 1679년 함경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다음해에 이조참판이 되었으나, 경신대출척으로 파직되어 폐서인이 되었다.

1682년 직첩을 환수받았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참고문헌]

孝宗實錄‧顯宗實錄‧肅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