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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선(趙繼先)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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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효백(孝伯)
생년1570(선조 3)
졸년1627(인조 5)
시대조선중기
본관함안(咸安)
활동분야무신 > 무신
조준남(趙俊男)
외조부이경성(李景成)

[상세내용]

조계선(趙繼先)
1570년(선조 3)∼1627년(인조 5).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효백(孝伯).

부친은 참봉 조준남(趙俊男)이며, 모친은 이경성(李景成)의 딸이다.

자라면서 지용(智勇)이 뛰어나고 괴위(魁偉)하여 궁마(弓馬)를 익혔다.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여 낮은 직에 있다가, 얼마뒤 광해군의 혼탁한 정치에 실망, 관직에서 물러나 두문불출하였다.

그러나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다시 관계에 진출하여 선전관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 구성부(龜城府)가 적에게 함락되어 그의 처남인 중군(中軍) 이윤서(李胤緖)가 포위되자 원병으로 파견되었는데, 이윤서는 그가 도착하기 전에 적의 포위망을 뚫고 원수 장만(張晩)의 수영(帥營)에 돌아와 적장을 죽이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자결하였다.

뒤늦게 이윤서의 시신을 거두어 복명하였으므로, 그 행동이 느린 것에 대하여 유사(有司)의 탄핵을 받고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곧이어 명나라모문룡(毛文龍)이 가도(椵島)에 들어와 선천에 진을 치고 있자 조정에서는 이를 우환으로 여겨 이완(李莞)의주부윤으로 보냈는데, 그의 막하에서 군무를 논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부대를 인솔하고 일선에 먼저 나아가 역전(力戰)하다가 전사하였다.

1706년(숙종 32) 아버지 조준남과 함께 정려가 내려지고, 1854년(철종 5) 병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1868년(고종 5) 병조참판으로 가증(加贈)되었다.

[참고문헌]

密菴文集
咸安邑誌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