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한(趙維韓)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C720D55CB1558X0 |
자(字) | 지국(持國) |
생년 | 1558(명종 13) |
졸년 | 1613(광해군 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한양(漢陽)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조양정(趙揚庭) |
조부 | 조옥(趙玉) |
증조부 | 조방언(趙邦彦) |
외조부 | 한응성(韓應聖) |

[관련정보]
[상세내용]
조유한(趙維韓)
1558년(명종 13)∼1613년(광해군 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지국(持國). 참판 조방언(趙邦彦)의 증손으로, 조부는 조옥(趙玉)이고, 부친은 조양정(趙揚庭)이며, 모친은 임진왜란 때, 칠백의사와 함께 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한응성(韓應聖)의 딸이다. 공조참판 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은 그의 동생이다.
1589년(선조 2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93년(선조 26) 검열‧기사관‧대교, 시강원설서‧사서를 두루 지냈으나, 1594년(선조 27) 사람됨이 경망하여 강관(講官)의 반열에 끼어있게 할 수 없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599년(선조 32) 권세가의 도움으로 형조좌랑에 재등용되었다.
평안도도사‧호조좌랑‧대동찰방(大同察訪)‧전주판관을 역임한 다음 1605년(선조 38) 함종현령(咸從縣令)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한 뒤에 세금징수가 끝이 없어 온 경내에 원성과 탄식이 가득하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10년(광해군 2) 남평현감(南平縣監)으로 있으면서, 왕에게 영원토록 수를 누리라는 「백수도(百壽圖)」를 바쳐 말장신구[馬粧] 1부가 하사되었다.
1589년(선조 2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93년(선조 26) 검열‧기사관‧대교, 시강원설서‧사서를 두루 지냈으나, 1594년(선조 27) 사람됨이 경망하여 강관(講官)의 반열에 끼어있게 할 수 없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599년(선조 32) 권세가의 도움으로 형조좌랑에 재등용되었다.
평안도도사‧호조좌랑‧대동찰방(大同察訪)‧전주판관을 역임한 다음 1605년(선조 38) 함종현령(咸從縣令)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한 뒤에 세금징수가 끝이 없어 온 경내에 원성과 탄식이 가득하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10년(광해군 2) 남평현감(南平縣監)으로 있으면서, 왕에게 영원토록 수를 누리라는 「백수도(百壽圖)」를 바쳐 말장신구[馬粧] 1부가 하사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집필자]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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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