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성(金遂性)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218C131D1546X0 |
자(字) | 유초(有初) |
생년 | ?(미상) |
졸년 | 1546(명종 1)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청풍(淸風)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세영(金世英)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수성(金遂性)
미상∼1546년(명종 1). 조선 중종 때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유초(有初).
부친은 김세영(金世英)이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가 일어났을 때, 성균관 유생으로 조광조(趙光祖) 등의 신원운동을 벌여 소두(疏頭)로 의금부에 수금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
152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33년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으나, 탄핵을 받아 파직되고 또다시 복직되기를 여러 번 하였다.
그뒤 홍문관부응교‧사헌부장령‧홍문관응교 등 주로 삼사의 언관직을 지내다가, 1537년 형조참의를 거쳐 이듬해 홍문관부제학이 되어, 외척들의 궁궐출입을 엄격히 할 것, 절검(節儉)을 숭상할 것, 대신을 중히 여길 것, 백성들의 고통을 살필 것, 공평한 도리를 행할 것, 염치를 기를 것 등을 상소하였다.
이어 호조참의를 거쳐 외직으로 나가 경기도‧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1541년 정시(庭試)에서 동부승지로 수석을 차지하였다.
1546년 예조참의로 윤원로(尹元老)를 탄핵하였으며, 그해에 공조참의로 있다가 죽었다. 천문에도 밝아 관상감(觀象監)의 일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부친은 김세영(金世英)이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가 일어났을 때, 성균관 유생으로 조광조(趙光祖) 등의 신원운동을 벌여 소두(疏頭)로 의금부에 수금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
152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33년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으나, 탄핵을 받아 파직되고 또다시 복직되기를 여러 번 하였다.
그뒤 홍문관부응교‧사헌부장령‧홍문관응교 등 주로 삼사의 언관직을 지내다가, 1537년 형조참의를 거쳐 이듬해 홍문관부제학이 되어, 외척들의 궁궐출입을 엄격히 할 것, 절검(節儉)을 숭상할 것, 대신을 중히 여길 것, 백성들의 고통을 살필 것, 공평한 도리를 행할 것, 염치를 기를 것 등을 상소하였다.
이어 호조참의를 거쳐 외직으로 나가 경기도‧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1541년 정시(庭試)에서 동부승지로 수석을 차지하였다.
1546년 예조참의로 윤원로(尹元老)를 탄핵하였으며, 그해에 공조참의로 있다가 죽었다. 천문에도 밝아 관상감(觀象監)의 일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明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明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집필자]
김동수(金東洙)
대표명 | 김수성(金遂性) |
성명 | 김수성(金遂性) |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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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