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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현(李英賢)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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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희성(希聖)
생년1507(중종 2)
졸년1572(선조 5)
시대조선전기
본관광주(廣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남(李擥)
5대조이집(李集)
외조부이승원(李承元)

[상세내용]

이영현(李英賢)
1507년(중종 2)∼1572년(선조 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희성(希聖). 고려의 문신인 이집(李集)의 5대손으로 증참판 이남(李擥)의 아들이며, 모친은 목사 이승원(李承元)의 딸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생활이 곤궁하였으나 뜻을 세우고 부지런히 공부하였다.

1525년(중종 20) 사마시에 합격하고 153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곧 홍문관정자에 선임되고 이듬해에 다시 탁영시(擢英試)에 병과로 급제하여 왕의 사랑을 받아 박사수찬정언지평 등을 지냈으며, 1544년 시독관(侍讀官)교리를 거쳐 사복시정에 승진되어 이듬해에 『중종실록』 편수관을 겸임하였다.

같은해 응교사간 등을 역임하였고, 응교로 있을 때에 명종의 즉위와 함께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윤원형(尹元衡)의 미움을 받아 지방관과 한직으로 밀려나 9년을 지냈다. 다시 등용되어 교리직제학승지종부시정이조참의형조참의한성부우윤 등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1562년(명종 17) 청홍도관찰사(淸洪道觀察使)가 되었다.

1567년 첨지중추부사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고, 1568년(선조 1) 동지춘추관사『명종실록』 편찬을 지휘하였다.

그뒤 파직되었다가 1570년 서용되어 한성부좌윤을 역임하였다. 경연에 나아가 시강할 때에는 풍부한 학식과 청량한 음성으로 왕의 칭상(稱賞)을 받았으며, 옥사를 다스릴 때에는 판결이 분명하여 변동함이 없어 법정이 숙연하였다.

지방관으로 나가서는 민폐를 덜고 생활을 안정시키니 백성들이 칭송하였다 한다. 태종의 외예(外裔)라 하여 중종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明宗實錄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宋子大全

[집필자]

김용국(金龍國)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