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익(趙翊){1}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870C775FFFFB1474X0 |
자(字) | 익지(翊之) |
생년 | 1474(성종 5) |
졸년 | 1547(명종 2)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임천(林川)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조원경(趙元卿) |
[관련정보]
[상세내용]
조익(趙翊)
1474년(성종 5)∼1547년(명종 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익지(翊之). 성균사예(成均司藝) 조원경(趙元卿)의 아들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0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09년(중종 4) 승문원권지‧승문원부정자‧승문원정자‧저작‧박사를 거쳐 성균관전적을 지냈고, 그뒤에 중추부도사‧사온서영(司醞署令)을 거쳐 군자감정에 이르렀다. 두 차례에 걸쳐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중국사신과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어에 능통하였다.
문신들에게 한어를 강하였고, 최세진(崔世珍)과 더불어 한어로 토론회를 열고 문대(問對)에 막힘이 없었으므로 특별히 1계급 승진되기도 하였다.
성품이 근면하고 민첩하여 매사에 완급에 따라서 일을 잘 처리하였으며, 또한 성품이 강직하여 권력에 대하여도 기개를 굽히지 않았으므로 세인의 칭송을 받았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0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09년(중종 4) 승문원권지‧승문원부정자‧승문원정자‧저작‧박사를 거쳐 성균관전적을 지냈고, 그뒤에 중추부도사‧사온서영(司醞署令)을 거쳐 군자감정에 이르렀다. 두 차례에 걸쳐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중국사신과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어에 능통하였다.
문신들에게 한어를 강하였고, 최세진(崔世珍)과 더불어 한어로 토론회를 열고 문대(問對)에 막힘이 없었으므로 특별히 1계급 승진되기도 하였다.
성품이 근면하고 민첩하여 매사에 완급에 따라서 일을 잘 처리하였으며, 또한 성품이 강직하여 권력에 대하여도 기개를 굽히지 않았으므로 세인의 칭송을 받았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원영환(元永煥)
명 : "익(翊)"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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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