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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준(崔琪埈)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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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최기준(崔琪焌)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항일기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출신지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군서면(郡西面)
공훈애족장

[상세내용]

최기준(崔琪埈)
생졸년 미상.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군서면(郡西面)이다.

그는 영암 지역 만세운동을 3월 10일 영암 장날을 기해 거사하기로 하였으나,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고 일본 경찰의 조사와 감시가 뒤따라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영암의 유지 조극환(曺克煥)정학순(鄭鶴順)서구림리(西鳩林里)박규상(朴奎相)최한오(崔漢五)조병식(曺秉植) 등과 함께 다시 모의하여 영암 장날인 4월 10일 오전 9시를 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하기로 계획하고, 구림리(鳩林里)에 있는 간죽정(間竹亭)을 임시 연락사무소로 이용하였다.

4월 10일 그는 구림리 구림보통학교 교정에서 조병식과 함께 비상나팔을 불어 주민을 소집하였다. 이에 보통학교 직원들은 만류하였으나, 그는 상관하지 않고 보통학교 학생 300여 명 및 주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면사무소로 진출하였다가 다시 보통학교로 돌아왔다. 그는 이 일로 체포되어 대구복심법원에서 1년을 구형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러한 공훈을 기리어 정부에서는 199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영암군지
독립운동사위원회
독립운동사 3
독립운동사자료집 5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 3(1987)
전남도지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