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박규상(朴奎相)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BC15ADDCC0C1B1893X0
생년1893(고종 30)
졸년1921
시대항일기
본관함양(咸陽)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출신지전라남도 영암(靈巖) 군서면(群西面) 서구림리(西鳩林里)

[상세내용]

박규상(朴奎相)
1893년(고종 30)∼1921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출신지는 전라남도 영암(靈巖) 군서면(群西面) 서구림리(西鳩林里)이다.

1919년 3‧1운동 때 경성약학전문학교(京城藥學專門學校) 학생으로 참여하였으며, 이후 3월 11일 영암에서 지인과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으나 일제의 삼엄한 감시로 인하여 산발적 운동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최한오(崔漢五), 조병식(曺秉植)과 함께 만세운동을 다시 계획하였다. 그리고 조극환(曺克煥), 정학순(鄭鶴順), 최민섭(崔旻燮)에게 연락을 취해 4월 10일에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약속하였다. 거사일에 박규상(朴奎相)은 광장에 모인 시위 군중에게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다가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법원에서 1년 6월의 형을 받고 복역 중 고문으로 인하여 얻은 병인 인정되어 보석방되었으나 집으로 돌아오던 중 사망하였다.

198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영암군지
독립운동사위원회
독립운동사3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3(1987)
전남도지
두산백과(http://www.doopedia.co.kr/)

[집필자]

홍현성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