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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기(白貞基)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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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구파(鷗波)
생년1896(건양 1)
졸년1934
시대항일기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출신지전라북도 정읍
공훈건국훈장 국민장

[상세내용]

백정기(白貞基)
1896년∼1934년. 독립운동가. 호는 구파(鷗波). 전라북도 정읍 출신.

1919년 서울에 올라와 3‧1운동을 목격하고, 고향에 돌아가 동지를 규합하여 일제와의 무장항쟁을 전개하였다.

같은해 8월 인천에 있는 일본군 시설물을 파괴하려다가 사전에 폭로되어 만주 봉천(奉天)으로 망명하였다.

독립운동의 군자금조달을 위하여 여러 차례 국내에 잠입하여 활동하다가 1920년 서울 중부경찰서에 구속되기도 하였다.

그뒤 주로 북경(北京)을 중심으로 이회영(李會榮)유자명(柳子明)이을규(李乙奎)정화암(鄭華巖)신채호(申采浩) 등과 자주 접촉하며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이때 이회영신채호의 영향으로 무정부주의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1923년 9월 중국 후난성(湖南省) 둥팅호(洞庭湖) 근처에 무정부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농촌사회건설에 참여하였다.

1924년 여름 일본 동경에 잠입하여 수력공사장‧주요건물 등을 폭파하기로 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여 북경으로 귀환하였다.

1924년 9월 일본관헌의 탄압을 피해 상해(上海)로 가서 정화암 등과 함께 영국인이 경영하는 철공장에 들어가 폭탄제조기술을 익히는 한편 노동문제에 관한 이해를 깊게 하였다.

1925년 상해에서 5‧30 총파업이 일어나자 중국인 무정부주의자들과 더불어 노동자운동을 전개하여 10여만명 단위의 대노동자조합을 만들어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이용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1927년 푸젠성(福建省) 취안저우(泉州)에서 민단편련처(民團編練處)를 조직하여 농촌의 자치조직을 통해 무정부주의운동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으며, 1928년 5월초에는 일본상품배격운동을 지도하였고, 5월말에는 아시아 각국의 무정부주의자들이 모여 결성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東方無政府主義者聯盟)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1930년 북만주로 가서 북만주에 있는 한국무정부주의자연맹의 동지들과 자유혁명자연맹(自由革命者聯盟)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민중훈련에 힘썼다.

1931년 9월 한국중국일본의 무정부주의자들이 모여 항일구국연맹을 결성하고 적의 국경기관 및 수송기관의 파괴‧요인사살‧친일파숙청 등을 목표로 ‘비티피(BTP)’라는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을 조직하여 배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무렵 상해에는 새롭게 각지에서 무정부주의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는데, 이회영정화암과 함께 이들을 규합,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을 결성하였다.

1933년 일본주중대사인 아리요시(有吉明)상해 훙커우(虹口)에 있는 일본요정 육삼정(六三亭)에서 일본정객 참모부원들을 위시한 친일중국정객과 군인 백여명을 초대하여 연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이강훈(李康勳)원심창(元心昌)과 함께 습격하려다 잡혀 일본 나가사키법원(長崎法院)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지병으로 죽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東國血史(殉國精神宣揚會, 1955)
抗日殉國義烈士傳(吳在植, 行政新聞社, 1959)
독립운동사 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大韓民國臨時政府史(李炫熙, 集文堂, 1982)
3‧1獨立運動과 臨時政府의 法統性(李炫熙, 東方圖書, 1987)

[집필자]

이현희(李炫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