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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소(羅仲昭)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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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나비장군
자(字)영훈(泳薰)
호(號)포석(抛石)
생년1866(고종 3)
졸년1925
시대조선후기
본관나주(羅州)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아명나봉길(羅奉吉)
출신지경기도 고양
공훈건국훈장 국민장

[상세내용]

나중소(羅仲昭)
1866년(고종 3)∼1925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나주(羅州). 아명(雅名)은 나봉길(羅奉吉), 별명은 나비장군. 자는 영훈(泳薰), 호는 포석(抛石). 경기도 고양 출신.

1882년 무과에 급제한 뒤 대한제국의 무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유학하여 1898년에 졸업하였다.

진위대부위(鎭衛隊副尉)를 지내다가 국권이 침탈당하자 만주로 건너가 항일투쟁에 나섰다.

1919년 서일(徐一)김좌진(金佐鎭)현천묵(玄天黙)이범석(李範奭) 등과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조직하였으며, 독립군 양성을 위하여 왕청현(旺淸縣)에 설립된 사관양성소 교성대장(敎成隊長)을 맡아 무장항일투쟁의 실력을 길렀다.

1920년에 일본군 19사단과 21사단이 북로군정서를 목표로 양협작전을 전개한다는 정보에 따라 임전조직의 단행으로 참모장에 취임하였다.

같은해 10월 20일부터 23일까지 대소 10여회의 청산리대첩에서 참모장으로 총사령관 김좌진과 함께 사상 유례 없는 대승을 거두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920년 겨울, 대한독립군단의 일원으로 노령(露領)에 들어갔다가 소련의 기만을 예견하고 김좌진과 함께 북만주 영안(寧安)으로 돌아와 애국지사들을 규합하여 신민부(新民府)를 조직하고 참모부 위원장을 맡아 무장항일투쟁의 구체적 계획을 작성하는 한편, 목릉현소추풍(穆陵縣小秋風)에 성동사관학교(城東士官學校)를 설립하여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는 데에 힘썼다.

1963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武裝獨立運動秘史(蔡根植, 大韓民國公報處, 1949)
韓國獨立運動史 3(國史編纂委員會, 1967)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大韓民國獨立運動功勳史(金厚卿, 光復出版社, 1983)

[집필자]

김광남(金光男)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