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윤(趙東潤)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B3D9C724B1871X0 |
호(號) | 혜석(惠石) |
생년 | 1871(고종 8) |
졸년 | 1923 |
시대 | 항일기 |
본관 | 풍양(豊壤)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조영하(趙寧夏) |
[상세내용]
조동윤(趙東潤)
1871년(고종 8)∼1923년.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호는 혜석(惠石). 판서 조영하(趙寧夏)의 아들이다.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내고, 1887년(고종 2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설서‧응교‧총어영군사마(摠禦營軍司馬)‧동부승지‧대사성‧형조참의‧공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897년 친위제3대장‧육군참장(陸軍參將)을 거쳐 원수부군무국장(元帥府軍務局長)‧육군법원장‧무관학교장‧시종무관장을 역임하였다.
1904년 훈2등태극장(勳二等太極章)을 받았고 이듬해 일본육군 시찰의 특명을 받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 훈1등욱일대수장(勳一等旭日大綬章)을 받았으며, 1907년에 다시 일본에 건너가 군무를 시찰하고 돌아왔다.
이무렵 일진회(一進會)에 들어가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였으며, 1910년 국권상실 후 일본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서화에 뛰어났으며 난초를 잘 그렸다.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내고, 1887년(고종 2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설서‧응교‧총어영군사마(摠禦營軍司馬)‧동부승지‧대사성‧형조참의‧공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897년 친위제3대장‧육군참장(陸軍參將)을 거쳐 원수부군무국장(元帥府軍務局長)‧육군법원장‧무관학교장‧시종무관장을 역임하였다.
1904년 훈2등태극장(勳二等太極章)을 받았고 이듬해 일본육군 시찰의 특명을 받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 훈1등욱일대수장(勳一等旭日大綬章)을 받았으며, 1907년에 다시 일본에 건너가 군무를 시찰하고 돌아왔다.
이무렵 일진회(一進會)에 들어가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였으며, 1910년 국권상실 후 일본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서화에 뛰어났으며 난초를 잘 그렸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純宗實錄
文品案
大韓帝國官員履歷書
朝鮮貴族列傳(大村友之丞, 朝鮮總督府印刷局, 1910)
駐韓日本公使館記錄收錄―韓末官人의 經歷―(崔永禧, 史學硏究 21, 1969)
純宗實錄
文品案
大韓帝國官員履歷書
朝鮮貴族列傳(大村友之丞, 朝鮮總督府印刷局, 1910)
駐韓日本公使館記錄收錄―韓末官人의 經歷―(崔永禧, 史學硏究 21, 1969)
[집필자]
조항래(趙恒來)
명 : "동윤(東潤)"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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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