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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옥(裵相玉)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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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배규인(裵奎仁)
생년1862(철종 13)
졸년1894(고종 32)
시대조선후기
본관달성(達城)
활동분야종교 > 동학인
배응채(裵應彩)
출생지전라남도 무안(務安) 삼향면(三鄕面) 대양리(大陽里)

[상세내용]

배상옥(裵相玉)
1862(철종 13)∼1894년(고종 31) 12월 24일. 조선 말기 동학 접주. 본관은 달성(達城)으로 전라남도 무안(務安) 삼향면(三鄕面) 대양리(大陽里)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배응채(裵應彩)이다. 동학농민군 활동을 하다가 무안 삼향면에서 오한수(吳漢洙)에게 체포되어 처형된 배규찬(裵奎贊: 일명 배상오(裵相五))이 동생이다.무안(務安)의 동학 대접주로서 그 세력이 손화중(孫華仲), 전봉준(全琫準), 김개남(金開男) 등의 접주 세력과 비슷하거나 클 정도였다.

1894년(고종 31) 3월 동학농민군들의 1차 봉기 때 해남(海南) 김춘두 등과 함께 고창(高敞) 무장면(茂長面) 동음치(冬音峙) 당뫼[堂山: 현재의 공음면 구수리 당산마을)에 집결하여 전봉준(全琫準), 손화중(孫華仲), 김개남(金開南) 등과 함께 창의문을 선포한 후 부안(扶安)정읍(井邑) 덕천면(德川面) 하학리(下鶴里) 황토현(黃土峴) 전투에서 관군에게 대승하고 전주성(全州城)까지 점령하였다. 이때 그는 무안군(務安郡) 청계면(淸溪面) 청천리(淸川里)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일본군의 철수를 요구하였다.

이후 전봉준으로부터 2차 농민군이 봉기한다는 통문을 받고 무안에서 2, 000명의 동학도를 이끌고 북도 접주 손병희(孫秉熙)와 합세하여 관군과 싸웠으나 장흥(長興)에서 패배하였다. 그는 장흥전투에서는 피신을 하였으나 해남(海南) 남쪽 바닷가인 은소면(현 松旨面)에서 윤규룡(尹奎龍)에게 붙잡혀 일본군에 넘겨진 후 죽음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전남동학농민혁명사
전라남도지
전남향토문화백과사전

[집필자]

박상수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