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金明鎭)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BA85C9C4B1840X0 |
자(字) | 치성(稚誠) |
생년 | 1840(헌종 6)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안동(安東[新])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images/showMeta.gif)
부 | 김세균(金世均) |
생부 | 김석균(金奭均) |
조부 | 김병선(金炳先) |
![](/images/hideMeta.gif)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명진(金明鎭)
1840년(헌종 6)∼미상. 고종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新]). 자는 치성(稚誠).
조부는 김병선(金炳先), 부친은 김석균(金奭均)이며, 김세균(金世均)에게 입양되었다.
1870년(고종 7) 정시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73년에 별겸춘추(別兼春秋)가 되고, 이듬해에는 암행어사가 되어 충청좌도에 파견되었다.
1879년에 동부승지를 거쳐 1882년에는 대사성(大司成)에 올랐다.
그뒤 시관(試官)‧춘천부사를 거쳐 1886년 경기관찰사, 1888년 경상도관찰사 등 외직에만 5년 이상 근무하였다. 경기‧경상도관찰사로 재직중에 올린 장계(狀啓)의 내용에는 당시 수취체제의 혼란상이 상세히 적혀 있어서 고종연간의 사회상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고종실록』에는 장계내용이 요약되어 나타나 있는 바, 경기도에 관한 것이 7회, 경상도에 관한 것이 4회나 기록되어 있다.
1890년에는 이조참판을 지냈다.
조부는 김병선(金炳先), 부친은 김석균(金奭均)이며, 김세균(金世均)에게 입양되었다.
1870년(고종 7) 정시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73년에 별겸춘추(別兼春秋)가 되고, 이듬해에는 암행어사가 되어 충청좌도에 파견되었다.
1879년에 동부승지를 거쳐 1882년에는 대사성(大司成)에 올랐다.
그뒤 시관(試官)‧춘천부사를 거쳐 1886년 경기관찰사, 1888년 경상도관찰사 등 외직에만 5년 이상 근무하였다. 경기‧경상도관찰사로 재직중에 올린 장계(狀啓)의 내용에는 당시 수취체제의 혼란상이 상세히 적혀 있어서 고종연간의 사회상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고종실록』에는 장계내용이 요약되어 나타나 있는 바, 경기도에 관한 것이 7회, 경상도에 관한 것이 4회나 기록되어 있다.
1890년에는 이조참판을 지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承政院日記
日省錄
備邊司謄錄
國朝榜目
高宗時代史 1∼3(國史編纂委員會, 1970)
承政院日記
日省錄
備邊司謄錄
國朝榜目
高宗時代史 1∼3(國史編纂委員會, 1970)
[집필자]
박민영(朴敏泳)
대표명 | 김명진(金明鎭) |
성명 | 김명진(金明鎭) |
성명 : "김명진(金明鎭)"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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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