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덕(李鳳德)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D09B355B1830X0 |
자(字) | 희서(希瑞) |
호(號) | 두남(斗南) |
생년 | 1830(순조 30)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전의(全義)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명진(李命鎭) |
조부 | 이영재(李榮在) |
출신지 |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
[상세내용]
이봉덕(李鳳德)
1830년(순조 30)∼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희서(希瑞), 호는 두남(斗南),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출신이다. 조부는 이영재(李榮在)이며, 부친은 교관(校官) 이명진(李命鎭)이다.
1867년(고종 4) 정묘 식년시 을과 3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1869년(고종 6) 부사정(副司正), 사록(司錄), 1870년(고종 7) 교서관교리(校書館校理), 지평(持平), 다음해 장령(掌令), 1874년(고종 11)에 사간(司諫), 1891년(고종 28) 부교리(副校理) 등을 지냈다.
그는 시(詩), 논(論), 책(策), 부(賦)로도 이름을 떨쳤는데, 그가 지제교(知製敎)로 재직할 때, 김병학(金炳學)이 진공사(進貢使)로 청나라에 갔는데, 그곳 예부주사(禮部主事)가 이명진(李命鎭)이 쓴 방물표를 보고 “매우 아름답다.” 고 칭찬하자, 왕이 방물표를 쓴 그를 불러 관복, 서책 등을 하사하였다.
1867년(고종 4) 정묘 식년시 을과 3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1869년(고종 6) 부사정(副司正), 사록(司錄), 1870년(고종 7) 교서관교리(校書館校理), 지평(持平), 다음해 장령(掌令), 1874년(고종 11)에 사간(司諫), 1891년(고종 28) 부교리(副校理) 등을 지냈다.
그는 시(詩), 논(論), 책(策), 부(賦)로도 이름을 떨쳤는데, 그가 지제교(知製敎)로 재직할 때, 김병학(金炳學)이 진공사(進貢使)로 청나라에 갔는데, 그곳 예부주사(禮部主事)가 이명진(李命鎭)이 쓴 방물표를 보고 “매우 아름답다.” 고 칭찬하자, 왕이 방물표를 쓴 그를 불러 관복, 서책 등을 하사하였다.
[참고문헌]
국조문과방목
완산군사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조선왕조순조실록
완산군사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조선왕조순조실록
[집필자]
전주원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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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