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조성가(趙性家)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870C131AC00B1824X0
자(字)직교(直敎)
호(號)월고(月皐)
생년1824(순조 24)
졸년1904(광무 8)
시대조선후기
본관함안(咸安)
활동분야학자 > 유생
조광식(趙匡植)
김해김씨(金海金氏)
외조부김석신(金錫信)
출신지하동
저서『월고문집』

[상세내용]

조성가(趙性家)
1824년(순조 24)∼1904년. 한말의 유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직교(直敎), 호는 월고(月皐). 하동 출신. 부친은 동몽교관에 증직된 조광식(趙匡植)이며, 모친은 김해김씨(金海金氏)김석신(金錫信)의 딸이다.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1883년(고종 20) 선공감감역에 제수되었고, 1902년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에 올랐다. 성리학적 처지에서 기정진의 이일분수설(理一分殊說)을 적극 지지하여 많은 연구를 거쳐 기정진에게 질문하자, 기정진은 81세 때 이에 대한 답설로 「외필(猥筆)」 1편을 지었는데, 그뒤 간재학파(艮齋學派)와 연재학파(淵齋學派)로부터 성리학적 논쟁이 되기도 하였다.

월봉산(月峰山) 밑에 취수정사(取水精舍)를 짓고 후진교육에 전념하면서 최익현(崔益鉉)정재규(鄭載圭)기우만(奇宇萬) 등과 교유하였다.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지리산으로 들어가 두문불출하고, 한말의 급변하는 과정에서 유학의 본질을 지키기 위하여 「부정척사론(扶正斥邪論)」을 지어 외세의 압력에 저항하였다.

시와 문장이 뛰어났다. 장성고산서원(高山書院)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월고문집』 20권 10책이 있다.

[참고문헌]

蘆沙集
月皐文集

[집필자]

이명래(李明來)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