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묵(金平黙)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D3C9BB35B1819X0 |
자(字) | 치장(穉章) |
호(號) | 중암(重菴) |
시호(諡號) | 문의(文懿) |
생년 | 1819(순조 19) |
졸년 | 1891(고종 28)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청풍(淸風)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부 | 김성양(金聖養) |
모 | 장수황씨(長水黃氏) |
저서 | 『중암선생문집』 |
저서 | 『중암고(重菴稿)』 |
저서 | 『근사록부주(近思錄附註)』 |
저서 | 『학통고(學統考)』 |
저서 | 『천군편(天君編)』 |
저서 | 『대곡문답(大谷問答)』 |
저서 | 『치도사의(治道私議)』 |
저서 | 『해상필어(海上筆語)』 |
저서 | 『경장문답(更張問答)』 |
저서 | 『붕사잡록(鵬舍雜錄)』 |
저서 | 『해상록(海上錄)』 |
저서 | 『삼강문답(三江問答)』 |
저서 | 『구곡문답(龜谷問答)』 |
저서 | 『벽산심설연원(壁山心說淵源)』 |
저서 | 『척양대의(斥洋大義)』 |
저서 | 『남정기문(南征記聞)』 |
저서 | 『우촌수담(雨村手談)』 |
저서 | 『노강수록(鷺江隨錄)』 |
[상세내용]
김평묵(金平黙)
1819년(순조 19)∼1891년(고종 28).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치장(穉章), 호는 중암(重菴).
세거지는 경기도 포천. 부친은 김성양(金聖養)이고, 모친은 장수황씨(長水黃氏)이다.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5세에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십구사략(十九史略)』 및 『소학』을 읽고, 13세에 경서를 대략 이해하였다.
24세에 이항로를 찾아가 배우고, 또 홍직필(洪直弼)을 찾아 배우는 등 학업에 전념하였다. 두 선생을 동시에 따른 관계로 학설은 상당히 온건하였다.
1852년(철종 3) 홍직필이 죽은 뒤로는 다시 이항로의 학설을 따라 심즉리(心卽理)의 설을 많이 따랐으며, 특히 이항로가 본심(本心)이 이(理)라고 하는 데 비해, 예지(睿智)를 이(理)라고 하여, 그 내용에 있어서는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같은 문하의 유중교(柳重敎)는 심(心)은 기(氣)라는 입장을 취해 명덕(明德)을 이로 보고 있었는데 이런 견해 차이로 당시에 큰 논쟁을 일으켰다.
1874년에 스승의 『화서아언(華西雅言)』을 편집, 간행하였으며, 1880년에 선공감가감(繕工監假監)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881년 위정척사(衛正斥邪)를 부르짖다가 섬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1900년 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에 추증되었으며, 미원서원(迷原書院) 및 보산서원(寶山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중암선생문집』 및 별집‧『중암고(重菴稿)』‧『근사록부주(近思錄附註)』‧『학통고(學統考)』‧『천군편(天君編)』‧『대곡문답(大谷問答)』‧『치도사의(治道私議)』‧『해상필어(海上筆語)』‧『경장문답(更張問答)』‧『붕사잡록(鵬舍雜錄)』‧『해상록(海上錄)』‧『삼강문답(三江問答)』‧『구곡문답(龜谷問答)』‧『벽산심설연원(壁山心說淵源)』‧『척양대의(斥洋大義)』‧『남정기문(南征記聞)』‧『우촌수담(雨村手談)』‧『노강수록(鷺江隨錄)』 등이 있다.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세거지는 경기도 포천. 부친은 김성양(金聖養)이고, 모친은 장수황씨(長水黃氏)이다.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5세에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십구사략(十九史略)』 및 『소학』을 읽고, 13세에 경서를 대략 이해하였다.
24세에 이항로를 찾아가 배우고, 또 홍직필(洪直弼)을 찾아 배우는 등 학업에 전념하였다. 두 선생을 동시에 따른 관계로 학설은 상당히 온건하였다.
1852년(철종 3) 홍직필이 죽은 뒤로는 다시 이항로의 학설을 따라 심즉리(心卽理)의 설을 많이 따랐으며, 특히 이항로가 본심(本心)이 이(理)라고 하는 데 비해, 예지(睿智)를 이(理)라고 하여, 그 내용에 있어서는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같은 문하의 유중교(柳重敎)는 심(心)은 기(氣)라는 입장을 취해 명덕(明德)을 이로 보고 있었는데 이런 견해 차이로 당시에 큰 논쟁을 일으켰다.
1874년에 스승의 『화서아언(華西雅言)』을 편집, 간행하였으며, 1880년에 선공감가감(繕工監假監)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881년 위정척사(衛正斥邪)를 부르짖다가 섬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1900년 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에 추증되었으며, 미원서원(迷原書院) 및 보산서원(寶山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중암선생문집』 및 별집‧『중암고(重菴稿)』‧『근사록부주(近思錄附註)』‧『학통고(學統考)』‧『천군편(天君編)』‧『대곡문답(大谷問答)』‧『치도사의(治道私議)』‧『해상필어(海上筆語)』‧『경장문답(更張問答)』‧『붕사잡록(鵬舍雜錄)』‧『해상록(海上錄)』‧『삼강문답(三江問答)』‧『구곡문답(龜谷問答)』‧『벽산심설연원(壁山心說淵源)』‧『척양대의(斥洋大義)』‧『남정기문(南征記聞)』‧『우촌수담(雨村手談)』‧『노강수록(鷺江隨錄)』 등이 있다.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참고문헌]
重菴先生文集
朝鮮儒敎淵源(張志淵, 아세아문화사, 1973)
朝鮮儒敎淵源(張志淵, 아세아문화사, 1973)
[집필자]
김용걸(金容傑)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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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