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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왕후(神貞王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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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08(순조 8)
졸년1890(고종 27)
시대조선후기
본관풍양(豊壤)
활동분야왕실 > 비빈
외조부송시연(宋時淵)
묘소경기도 양주

[상세내용]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년(순조 8)∼1890년(고종 27). 익종의 비(妃). 풍양조씨(豊壤趙氏). 헌종의 어머니이다. 부친은 풍은부원군 조만영(趙萬永)이며, 모친은 송준길(宋浚吉)의 후손인 목사 송시연(宋時淵)의 딸이다.

12세 때 익종비로 책봉되어 세자빈이 되었고 효부라는 칭찬을 들었다.

1827년(순조 27) 헌종을 낳았다.

1834년 헌종이 왕위에 오르고 죽은 남편이 익종으로 추봉되자 왕대비로되고, 1857년(철종 8) 순조비인 순원왕후(純元王后)가 죽자 대왕대비로 되었다.

철종이 재위 13년 만에 후사(後嗣)도 없이 죽자 왕실의 권한은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가 쥐게 되었다. 그전부터 흥선군 이하응(李昰應) 및 조카인 조성하(趙成夏)와 손을 잡고 있었으므로 즉각적으로 흥선군의 둘째 아들로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또한, 안동김씨(安東金氏) 세력을 더욱 약화시키기 위하여 고종을 아들로 삼아 철종이 아니라 익종의 뒤를 잇게 하였다. 그리하여 내전에 고종의 옥좌를 마련하고 자신은 그뒤에서 수렴청정을 하였다.

1866년(고종 3) 2월까지 계속 수렴청정을 하며 관리 탐학의 방지, 진휼(賑恤), 황해도 도장(導掌) 폐해의 엄금(明禮宮 토지가 그곳에 많아 항상 대왕대비의 측근이 황해감사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공폐(貢弊)의 제거 등을 하였다고 하지만, 실제의 정권은 모두 흥선대원군이 잡도록 하교한 바가 있다.

고종민비(閔妃)가 정치에 참여하기 이전까지 효도를 다하였으나, 그뒤 민비의 질투를 두려워 한 대왕대비가 고종을 피하였다.

또한, 친정세력들을 대거 기용하였지만, 그들이 잇따른 정변에 희생되어 조씨가문이 쇠락해지자 슬퍼하였다. 더욱이, 국가가 여러 재난에 시달리게 되자 눈물을 흘리며 죽지 않는 것을 한탄하였다고 한다. 능은 수릉綏陵)으로 경기도 양주에 있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哲宗實錄
高宗實錄
梅泉野錄
李朝末葉의 王室秘史(珠簾山人, 朝光 6―4, 1940)

[집필자]

장영민(張泳敏)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