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문(金益文)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775BB38B1806X0 |
자(字) | 공회(公晦) |
시호(諡號) | 문정(文靖) |
생년 | 1806(순조 6)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청풍(淸風)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경선(金景善)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익문(金益文)
1806년(순조 6)∼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공회(公晦).
부친은 이조참의 김경선(金景善)이다.
1838년(헌종 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40년 한림소시(翰林召試)에 선발됨으로써 출사하였다.
1842년에 평안도암행어사가 되어 숙천(肅川)‧삼화(三和)‧개천(价川)‧순천(順川)‧맹산(孟山) 등지의 탐관오리들을 숙청하여 민심을 안정시켰다.
그뒤 이조참의‧대사성‧이조참판을 역임하고, 고종조에 들어와서는 형조‧예조‧공조의 판서를 차례로 역임, 정계의 중요인물로 부상하게 되었다.
또한, 1869년(고종 6)에는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한성부판윤‧홍문관제학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부친은 이조참의 김경선(金景善)이다.
1838년(헌종 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40년 한림소시(翰林召試)에 선발됨으로써 출사하였다.
1842년에 평안도암행어사가 되어 숙천(肅川)‧삼화(三和)‧개천(价川)‧순천(順川)‧맹산(孟山) 등지의 탐관오리들을 숙청하여 민심을 안정시켰다.
그뒤 이조참의‧대사성‧이조참판을 역임하고, 고종조에 들어와서는 형조‧예조‧공조의 판서를 차례로 역임, 정계의 중요인물로 부상하게 되었다.
또한, 1869년(고종 6)에는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한성부판윤‧홍문관제학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참고문헌]
憲宗實錄
哲宗實錄
高宗實錄
國朝榜目
哲宗實錄
高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박민영(朴敏泳)
명 : "익문(益文)"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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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