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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석룡(楊錫龍)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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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운익(雲翼)
호(號)호은(壺隱)
생년1800(정조 24)
졸년1868(고종 5)
시대조선후기
본관남원(南原)
활동분야학자 > 유생
양지복(楊志馥)
광산김씨(光山金氏)
출생지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성내면(星內面) 옥제(玉提)
묘소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

[상세내용]

양석룡(楊錫龍)
1800년(정조 24)∼1868년(고종 5). 조선 후기 유학자.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성내면(星內面) 옥제(玉提)에서 태어났으며 양지복(楊志馥)의 장남이다.

부인은 광산김씨(光山金氏)이다.

학문과 문장이 뛰어났으나 벼슬에의 뜻을 두지 않고 후학양성에 전념하였다. 문인으로 좌찬성(左贊成) 김병기(金炳冀),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김병학(金炳學), 예조판서(禮曹判書) 김병필(金炳弼), 이조판서(吏曹判書) 신석희(申錫禧) 등이 있다.

제자들의 권유로 59세 되던 철종 9년(1858) 무오(戊午) 식년시(式年試) 진사 2등 22위로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장의(掌議)로 뽑혀 수학하였다. 자녀로 3남 1녀를 두었다.

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에 있다.

[참고문헌]

순창군지
사마방목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집필자]

박연희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