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순(徐憙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1CD76CC21CB1793X0 |
자(字) | 치회(穉晦) |
호(號) | 우란(友蘭) |
시호(諡號) | 숙헌(肅獻) |
생년 | 1793(정조 17) |
졸년 | 1857(철종 8)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대구(大丘)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서응보(徐應輔) |
조부 | 서유령(徐有寧) |

[관련정보]
[상세내용]
서희순(徐憙淳)
1793년(정조 17)∼1857년(철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치회(穉晦), 호는 우란(友蘭).
부친은 군수 서응보(徐應輔)이며, 조부는 판서 서유령(徐有寧)이다.
1816년(순조 1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에 등용되어 대교와 응교 등을 지냈으며, 1824년 대사성이 되었다. 이어서 이조참의‧대사간‧홍문관부제학‧이조참판‧예조참판‧직제학 등을 지내고, 1833년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
1835년(헌종 1) 대사헌이 되고, 이듬해 형조판서에 올랐다.
그뒤 한성부판윤과 예조‧병조‧형조‧호조‧이조판서 및 좌참찬‧판돈녕부사‧지중추부사 등을 지냈으며, 1855년(철종 6)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시호는 숙헌(肅獻)이다.
부친은 군수 서응보(徐應輔)이며, 조부는 판서 서유령(徐有寧)이다.
1816년(순조 1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에 등용되어 대교와 응교 등을 지냈으며, 1824년 대사성이 되었다. 이어서 이조참의‧대사간‧홍문관부제학‧이조참판‧예조참판‧직제학 등을 지내고, 1833년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
1835년(헌종 1) 대사헌이 되고, 이듬해 형조판서에 올랐다.
그뒤 한성부판윤과 예조‧병조‧형조‧호조‧이조판서 및 좌참찬‧판돈녕부사‧지중추부사 등을 지냈으며, 1855년(철종 6)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시호는 숙헌(肅獻)이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哲宗實錄
淸選考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憲宗實錄
哲宗實錄
淸選考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집필자]
홍순만(洪淳晩)
성명 : "서희순(徐憙淳)"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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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1-01-04 | 문과방목과 大丘徐氏世譜(2003년 간행)를 참고하여 본관을 달성(達城)에서 대구(大丘)로 수정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