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화(鄭琦和)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815AE30D654B1786X0 |
| 자(字) | 남중(南仲) |
| 호(號) | 헐오재(歇五齋) |
| 생년 | 1786(정조 10) |
| 졸년 | 1840(헌종 6) |
| 시대 | 조선후기 |
| 본관 | 초계(草溪) |
| 활동분야 | 문학 > 문인 |

| 부 | 정홍관(鄭鴻觀) |
| 생부 | 정홍진(鄭鴻晉) |
| 조부 | 정진로(鄭鎭魯) |
| 외조부 | 이기만(李淇萬) |

[상세내용]
정기화(鄭琦和)
1786년(정조 10)∼1840년(헌종 6). 조선 후기의 문인.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남중(南仲), 호는 헐오재(歇五齋).
고려 현종 때에 십이공도(十二公徒)의 하나였던 장배걸(鄭倍傑)의 26대손으로 청은군(淸隱君) 정진로(鄭鎭魯)의 손자이고, 첨지중추 정홍진(鄭鴻晉)의 아들이며, 모친은 경주이씨로 이기만(李淇萬)의 딸이다. 숙부 정홍관(鄭鴻觀)에게 입양되었다.
41세가 되던 1827년(순조 27)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와 사간원‧홍문관 등 삼사의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였으며 세자시강원필선에 이르렀다.
그는 사서(史書)의 체재를 충실하게 본뜬 「천군본기(天君本紀)」를 지어 일명 「심사(心史)」라 하였다. 이 작품은 인간의 성정(性情)을 의인화하여, 사람이 태어나서 30세가 될 때까지의 심상의 변화과정을 기년식(紀年式)으로 그린 우화소설(寓話小說)이다.
작품의 총론과 내용으로 보아 그는 당시 유학사상, 특히 심성론에 대하여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남인계열의 학자로 재질과 인품을 갖추었으나 당파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일생을 시문과 학문에 헌신 하였다. 이조참판‧홍문관제학이 증직되었다.
고려 현종 때에 십이공도(十二公徒)의 하나였던 장배걸(鄭倍傑)의 26대손으로 청은군(淸隱君) 정진로(鄭鎭魯)의 손자이고, 첨지중추 정홍진(鄭鴻晉)의 아들이며, 모친은 경주이씨로 이기만(李淇萬)의 딸이다. 숙부 정홍관(鄭鴻觀)에게 입양되었다.
41세가 되던 1827년(순조 27)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와 사간원‧홍문관 등 삼사의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였으며 세자시강원필선에 이르렀다.
그는 사서(史書)의 체재를 충실하게 본뜬 「천군본기(天君本紀)」를 지어 일명 「심사(心史)」라 하였다. 이 작품은 인간의 성정(性情)을 의인화하여, 사람이 태어나서 30세가 될 때까지의 심상의 변화과정을 기년식(紀年式)으로 그린 우화소설(寓話小說)이다.
작품의 총론과 내용으로 보아 그는 당시 유학사상, 특히 심성론에 대하여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남인계열의 학자로 재질과 인품을 갖추었으나 당파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일생을 시문과 학문에 헌신 하였다. 이조참판‧홍문관제학이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天君小說硏究(金光淳, 螢雪出版社, 1980)
[집필자]
고경식(高敬植)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