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조봉진(曺鳳振)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870BD09C9C4B1777X0
자(字)의경(儀卿)
호(號)신암(愼菴)
생년1777(정조 1)
졸년1838(헌종 4)
시대조선후기
본관창녕(昌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윤대(曺允大)

[상세내용]

조봉진(曺鳳振)
1777년(정조 1)∼1838년(헌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의경(儀卿), 호는 신암(愼菴). 이조판서 조윤대(曺允大)의 아들이다.

1802년(순조 2)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805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부교리필선이조참의대사성 등을 역임한 뒤, 1823년에 한성부판윤을 거쳐 형조판서에 올랐다.

그뒤 전라도관찰사로 있을 때 둔전(屯田)의 세제문제(稅制問題)와 관련, 조정의 시책에 대한 전라도 지방의 민폐유무(民弊有無)를 보고하는 일에 있어 왕을 속였다는 죄목으로 탄핵을 받고, 명천진도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보내다가 2년 뒤에 풀려나왔다.

1833년 동지사(冬至使)청나라에 다녀온 일이 있으며, 헌종공조판서를 거쳐 대사헌이조판서를 지낸 뒤 관직을 떠났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昌寧曺氏昌寧府院君世譜

[집필자]

조원래(趙湲來)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