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주(洪命周)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BA85C8FCB1770X0 |
자(字) | 자천(自天) |
호(號) | 효정(孝貞) |
시호(諡號) | 정간(靖簡) |
생년 | 1770(영조 46)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풍산(豊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홍희영(洪喜榮) |
[상세내용]
홍명주(洪命周)
1770년(영조 46)∼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자천(自天), 호는 효정(孝貞). 부사 홍희영(洪喜榮)의 아들이다.
1794년(정조 1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고, 1798년 설서‧지평을 거쳐, 1805년(순조 5) 정언이 된 뒤 이듬해 호조판서 이서구(李書九)가 왕비에 대한 공궤(供饋)를 과다지출한 것을 탄핵하다가 삭직되어 기장(機張)에 유배되었다.
이듬해에 풀려나와 동부승지에 있으면서 채홍원(蔡弘遠)‧채제공(蔡濟恭) 등의 원통함을 들어주기를 주청하였다.
그뒤 병조판서가 되어 1835년(헌종 1) 진하사(陳賀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시호는 정간(靖簡)이다.
1794년(정조 1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고, 1798년 설서‧지평을 거쳐, 1805년(순조 5) 정언이 된 뒤 이듬해 호조판서 이서구(李書九)가 왕비에 대한 공궤(供饋)를 과다지출한 것을 탄핵하다가 삭직되어 기장(機張)에 유배되었다.
이듬해에 풀려나와 동부승지에 있으면서 채홍원(蔡弘遠)‧채제공(蔡濟恭) 등의 원통함을 들어주기를 주청하였다.
그뒤 병조판서가 되어 1835년(헌종 1) 진하사(陳賀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시호는 정간(靖簡)이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國朝榜目
承政院日記
目省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承政院日記
目省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원근(李元根)
명 : "명주(命周)"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