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정(李輝正)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D718C815B1780X0 |
초명(初名) | 이광정(李光正) |
자(字) | 경복(景服) |
호(號) | 방야(方野) |
시호(諡號) | 문정(文貞) |
생년 | 1780(정조 4) |
졸년 | 1850(철종 1)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우봉(牛峰)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화(李禾) |
생부 | 이채(李采)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휘정(李輝正)
1780년(정조 4)∼1850년(철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초명은 이광정(李光正). 자는 경복(景服), 호는 방야(方野).
이채(李采)의 아들이며, 이화(李禾)에게 입양되었다.
1813년(순조 13) 교관으로 있으면서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정자를 거쳐 1824년 의주부윤, 1829년 예방승지‧행호군을 역임하고, 1834년 진하부사(進賀副使)로 청나라에 들어가 외교적 성과를 얻고 귀국하였다.
1837년(헌종 3) 경상도관찰사, 1839년 강원도관찰사, 1841년 한성부판윤‧대사헌, 그 이듬해 호조판서, 1843년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1850년(철종 1) 지돈녕부사가 되었으나 고령을 이유로 왕에게 여러 차례 간청하여 허락을 받고 치사한 뒤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이채(李采)의 아들이며, 이화(李禾)에게 입양되었다.
1813년(순조 13) 교관으로 있으면서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정자를 거쳐 1824년 의주부윤, 1829년 예방승지‧행호군을 역임하고, 1834년 진하부사(進賀副使)로 청나라에 들어가 외교적 성과를 얻고 귀국하였다.
1837년(헌종 3) 경상도관찰사, 1839년 강원도관찰사, 1841년 한성부판윤‧대사헌, 그 이듬해 호조판서, 1843년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1850년(철종 1) 지돈녕부사가 되었으나 고령을 이유로 왕에게 여러 차례 간청하여 허락을 받고 치사한 뒤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國朝榜目
憲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호종(金昊鍾)
성명 : "이광정(李光正)"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5-14 | 崇祿大夫行吏曹判書致仕奉朝賀李公輝正諡狀 을 참고하여 생년 1760을 1780년(정조 4)으로 하고 졸년 1850(철종 1)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