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안(尹光顔)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AD11C548B1757X0 |
자(字) | 복초(復初) |
호(號) | 반호(盤湖) |
생년 | 1757(영조 33) |
졸년 | 1815(순조 15)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파평(坡平)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윤동미(尹東美) |
증조부 | 윤유(尹楡)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윤광안(尹光顔)
1757년(영조 33)∼1815년(순조 1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복초(復初), 호는 반호(盤湖).
윤유(尹楡)의 증손이고, 윤동미(尹東美)의 아들이다.
1775년(영조 51) 생원이 되고, 1786년(정조 10)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리를 거쳐 대사간‧대사성‧충청도관찰사‧이조참의‧부호군 등을 역임하고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그가 재임 때에 주자(朱子)와 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한 영양 운곡서원(雲谷書院)의 사당을 헐고, 영정을 철거한 일이 있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1808년(순조 8) 암행어사 이우재(李愚在)의 탄핵을 받아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죄명으로 함경도 무산부에 유배되었다.
뒤에 돌아와서 벼슬이 판서에 이르렀다.
윤유(尹楡)의 증손이고, 윤동미(尹東美)의 아들이다.
1775년(영조 51) 생원이 되고, 1786년(정조 10)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리를 거쳐 대사간‧대사성‧충청도관찰사‧이조참의‧부호군 등을 역임하고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그가 재임 때에 주자(朱子)와 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한 영양 운곡서원(雲谷書院)의 사당을 헐고, 영정을 철거한 일이 있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1808년(순조 8) 암행어사 이우재(李愚在)의 탄핵을 받아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죄명으로 함경도 무산부에 유배되었다.
뒤에 돌아와서 벼슬이 판서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純祖實錄
憲宗實錄
國朝榜目
純祖實錄
憲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이원조(李源釣)
명 : "광안(光顔)"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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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