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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묵(金正黙)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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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두묵(斗黙)
자(字)이운(而運)
호(號)과재(過齋)
생년1739(영조 15)
졸년1799(정조 23)
시대조선후기
본관광산(光山)
활동분야학자 > 유생
김기재(金驥材)
진주유씨(晉州柳氏)
생부김위재(金偉材)
조부김운택(金雲澤)
외조부유상휘(柳尙徽)
저서『과재유고』

[상세내용]

김정묵(金正黙)
1739년(영조 15)∼1799년(정조 23).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초명은 김두묵(金斗黙), 자는 이운(而運), 호는 과재(過齋).

김장생(金長生)의 후손으로 부친은 김위재(金偉材)이며, 모친은 파평윤씨참봉 윤휴경(尹休耕)의 딸이다. 재당숙인 김기재(金驥材)에게 입양되었으며, 양모친은 진주유씨(晉州柳氏)전적(典籍) 유상휘(柳尙徽)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학업에도 충실하였으며, 능히 과장(科場)에 나갈 수 있었으나 할아버지인 김운택(金雲澤)이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벼슬에서 물러난 것을 보고 벼슬하기를 꺼려 학문에만 힘썼다.

1780년(정조 4) 도천(道遷)으로 돈녕부참봉(敦寧府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다시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경연서연관(經筵書筵官) 등에 제수되었으나 그때 족친인 김하재(金夏材)의 역변(逆變)이 있었으므로 끝내 사퇴하였다.

그는 경전 외에도 『심경(心經)』『근사록(近思錄)』『성학집요(聖學輯要)』를 강론하면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그는 성리학 예설(禮說)에 밝았으며, 『남당집(南塘集)』 중 심성(心性)‧이기(理氣)‧예설 등에 관한 한원진(韓元震)의 논술이 이이(李珥)송시열(宋時烈)의 본뜻에 많이 위배됨을 지적, 고증을 들어 변증하는 「규도수록(圭刀隨錄)」을 저술하였다.

저서로는 『과재유고』 11권 5책이 있다.

[참고문헌]


[집필자]

윤글동(尹글東)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