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양후(尹養厚)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C591D6C4B1729X0 |
자(字) | 유직(幼直) |
생년 | 1729(영조 5) |
졸년 | 1776(정조 즉위)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파평(坡平)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윤심헌(尹心憲) |
생부 | 윤심형(尹心衡) |
조부 | 윤봉소(尹鳳韶) |
외조부 | 황귀하(黃龜河)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윤양후(尹養厚)
1729년(영조 5)∼1776년(정조 즉위).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유직(幼直).
부사 윤봉소(尹鳳韶)의 손자이며, 참판 윤심형(尹心衡)의 둘째아들로서 작은아버지 윤심헌(尹心憲)에게 입양되었다. 친모친은 황규하(黃奎河)의 딸이며, 양모친은 도승지 황구하(黃龜河)의 딸이다.
1764년(영조 40) 유생9일제(儒生九日製)에서 뽑혀 전시(殿試)에 직부(直赴)되게 되었다. 음보로 은율현감으로 있다가 176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정언‧부교리를 거쳐 1773년 부제학에 오르고 이어 대사성, 승지를 지냈다.
이듬해 형 윤상후(尹象厚)와 더불어 등준시(登俊試)에 병과로 급제, 비변사부제조(備邊司副提調)를 거쳐 참판이 되었다.
1775년 세손(世孫: 정조)이 대리청정하게 되자 홍인한(洪麟漢)과 이를 극력 반대, 세손을 보호하는 홍국영(洪國榮)을 배척하는 등 벽파로 활약하였다가 정조가 즉위한 1776년 정후겸(鄭厚謙)과 더불어 해남에 유배되고 거제로 옮겨졌다. 이어 국청(鞠廳)이 열리고 그 일파가 신문을 받던 중에 고문으로 장사(杖死)되었다.
부사 윤봉소(尹鳳韶)의 손자이며, 참판 윤심형(尹心衡)의 둘째아들로서 작은아버지 윤심헌(尹心憲)에게 입양되었다. 친모친은 황규하(黃奎河)의 딸이며, 양모친은 도승지 황구하(黃龜河)의 딸이다.
1764년(영조 40) 유생9일제(儒生九日製)에서 뽑혀 전시(殿試)에 직부(直赴)되게 되었다. 음보로 은율현감으로 있다가 176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정언‧부교리를 거쳐 1773년 부제학에 오르고 이어 대사성, 승지를 지냈다.
이듬해 형 윤상후(尹象厚)와 더불어 등준시(登俊試)에 병과로 급제, 비변사부제조(備邊司副提調)를 거쳐 참판이 되었다.
1775년 세손(世孫: 정조)이 대리청정하게 되자 홍인한(洪麟漢)과 이를 극력 반대, 세손을 보호하는 홍국영(洪國榮)을 배척하는 등 벽파로 활약하였다가 정조가 즉위한 1776년 정후겸(鄭厚謙)과 더불어 해남에 유배되고 거제로 옮겨졌다. 이어 국청(鞠廳)이 열리고 그 일파가 신문을 받던 중에 고문으로 장사(杖死)되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人物志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國朝榜目
[집필자]
김양수(金良洙)
명 : "양후(養厚)"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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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