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김선행(金善行)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AE40C120D589B1716X0
생년1716(숙종 42)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안동(安東[新])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시서(金時敍)

[상세내용]

김선행(金善行)
1716년(숙종 42)∼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新]). 김시서(金時敍)의 아들이다.

1739년(영조 15)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설서가 되고, 이어 지평교리수찬정언 등을 지냈다.

1749년 헌납사간보덕을 거쳐 1755년 도승지예조참판이 되었다.

1756년 수원부사 재직시에는 경내의 흉년으로 농민들의 양곡이 떨어져 폐농지경이므로, 유고(留庫)의 향미(餉米)를 나누어주도록 상소하였다.

1757년 대사헌이 된 뒤 몇 차례에 걸쳐 중임하였는데, 특히 인륜을 거스르는 죄에 대하여 엄격하였다.

1760년 도승지함경도관찰사를 거쳐서 한성부좌윤을 지냈다.

1764년 조참(朝參)에서 간언이 없다고 영조가 책망하자, 옛 성왕의 간하는 법은 언관을 책하는 데 있지 않으므로 대신을 책하지 말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대사헌에서 파직되었다.

그뒤 예조참판을 지냈고, 1766년 동지부사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768년에는 다시 대사헌좌윤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손승철(孫承喆)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