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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영(李胤永)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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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윤지(胤之)
호(號)담화재(澹華齋)
호(號)단릉산인(丹陵山人)
생년1714(숙종 40)
졸년1759(영조 35)
시대조선후기
본관한산(韓山)
활동분야문학 > 문인
이기중(李箕重)

[상세내용]

이윤영(李胤永)
1714년(숙종 40)∼1759년(영조 35). 조선 중기의 문인화가.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윤지(胤之), 호는 단릉(丹陵) 또는 담화재(澹華齋).

색(穡)의 14대손으로 담양부사 이기중(李箕重)의 아들이며, 판서 태중(台重)의 조카이다.

김종수(金鍾秀)의 묘표에 의하면 관은 부사를 지냈다고 하였으나, 일찍이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산수와 더불어 평생을 보냈으며, 평소에 단양의 산수를 좋아하여 즐겨 찾더니, 나중에는 구담(龜潭)에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지냈기 때문에 단릉산인(丹陵散人)이라 하였다.

윤리에 돈독하고 강직한 지조를 존중하여 이인상(李麟祥)과 절친한 벗으로 지냈으나 성품은 질후내명(質厚內明)하였고, 큰아버지 태중의 영향으로 고기물(古器物)을 즐겼다고 한다.

노론의 문사들인 송문흠(宋文欽)김종수김무택(金茂澤)신소(申昭)황경원(黃景源) 등과 교유하며 지은 많은 시문이 『단릉유고(丹陵遺稿)』『단릉산인유집(丹陵散人遺集)』에 실려 있다.

글씨는 특히 예서와 전서에 뛰어나 이인상의 그림에 화제(畵題)를 많이 썼다.

그림은 이인상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하나, 필치가 한결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청호녹음도(淸湖綠陰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경송초루도(經松草樓圖)」(개인 소장) 등과 같은 전형적 문인화풍의 그림과 「삼척능파대(三陟凌波臺)」(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고란사도(皐蘭寺圖)」(개인 소장)와 같이 실경을 남종화풍으로 그린 것이 있다.

[참고문헌]

丹陵遺稿
丹陵散人遺集
凌壺集
閒靜堂集
江漢集
夢梧集
醇庵集
韓國의 美 12―山水畵 下―(安輝濬, 中央日報社, 1982)
李麟祥畵派의 연구(兪弘濬, 弘益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83)

[집필자]

유홍준(兪弘濬)
대표명이윤영(李胤永)
단릉(丹陵)

호 : "단릉(丹陵)"에 대한 용례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