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표(安杓)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548D45CFFFFB1710X0 |
자(字) | 정숙(定叔) |
생년 | 1710(숙종 36) |
졸년 | 1773(영조 49)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죽산(竹山[舊])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안종해(安宗海) |
[상세내용]
안표(安杓)
1710년(숙종 36)∼1773년(영조 4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정숙(定叔).
부친은 목사 안종해(安宗海)이다. 한원진(韓元震)의 문인으로, 1754년(영조 30)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봉직하다가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었고, 1763년에 헌납이 되어 장령을 거친 뒤 1764년에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65년에 사간‧집의‧사복시정이 되었는데, 마침 제주도에 기근이 들어 양리(良吏)를 뽑아 보내야 할 형편이었는바, 그는 대신들의 추천을 받아 친히 어명을 받고 가서 그 폐(弊)를 없애고 치화(治化)를 잘 하였다.
그러나 옥사(獄事)에 위반된 점이 있어 파직당하고 중앙으로 돌아오려고 하자, 그곳 백성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어 1767년에 형조참의‧대사간이 되었는바 왕이 숭정문(崇政門)에서 조참(朝參)을 행할 때 이에 불참한 위율(違律)로 해남현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1개월 뒤 다시 복직되어 대사간‧병조참의 등을 거쳐 여주목사를 지냈다.
그의 인품은 자신에 대해서 몹시 엄하였기 때문에 당시 파당을 이루던 시파(時派)‧벽파(僻派)들이 감히 그에게 접근하지 못하였으며, 그의 깨끗하고 신중한 행동에 머리를 숙였다고 한다.
부친은 목사 안종해(安宗海)이다. 한원진(韓元震)의 문인으로, 1754년(영조 30)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봉직하다가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었고, 1763년에 헌납이 되어 장령을 거친 뒤 1764년에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65년에 사간‧집의‧사복시정이 되었는데, 마침 제주도에 기근이 들어 양리(良吏)를 뽑아 보내야 할 형편이었는바, 그는 대신들의 추천을 받아 친히 어명을 받고 가서 그 폐(弊)를 없애고 치화(治化)를 잘 하였다.
그러나 옥사(獄事)에 위반된 점이 있어 파직당하고 중앙으로 돌아오려고 하자, 그곳 백성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어 1767년에 형조참의‧대사간이 되었는바 왕이 숭정문(崇政門)에서 조참(朝參)을 행할 때 이에 불참한 위율(違律)로 해남현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1개월 뒤 다시 복직되어 대사간‧병조참의 등을 거쳐 여주목사를 지냈다.
그의 인품은 자신에 대해서 몹시 엄하였기 때문에 당시 파당을 이루던 시파(時派)‧벽파(僻派)들이 감히 그에게 접근하지 못하였으며, 그의 깨끗하고 신중한 행동에 머리를 숙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대표명 | 안표(安杓) |
성명 | 안표(安杓) |
성명 : "안표(安杓)"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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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