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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언(姜熙彦)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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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운(景運)
호(號)담졸(澹拙)
생년1710(숙종 36)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진주(晉州)
활동분야미술 > 화가
강태복(姜泰復)
외조부정내교(鄭來橋)

[상세내용]

강희언(姜熙彦)
1710년(숙종 36)∼미상.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운(景運), 호는 담졸(澹拙).

만호(萬戶)를 지낸 강태복(姜泰復)의 아들이며, 정내교(鄭來橋)의 외손자이다.

1754년(영조 30)에 운과(雲科: 음양과의 이칭)에 급제한 뒤 감목관(監牧官)을 지냈다. 서울 삼청동에서 34세나 위인 선배화가 정선(鄭歚)과 이웃하여 지내면서 그로부터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강세황(姜世晃)과 교유가 깊었으며, 35세나 아래인 젊고 장래가 촉망되는 김홍도(金弘道)와도 교분이 두터웠다. 김홍도는 1778년 여름에 강희언의 집에서 풍속도 병풍을 그리기도 하였고, 강희언은 1781년 청화절(淸和節)에 김홍도의 집에서 열렸던 진솔회(眞率會)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이로 미루어 1781년까지는 생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유작은 드문 편으로 현재 「인왕산도(仁旺山圖)」와 「석공도(石工圖)」‧「사인삼경도(士人三景圖)」 등이 알려져 있다.

정선의 실경산수화풍을 따른 「인왕산도」는 늦은봄 도화동에 올라 인왕산을 바라보고 그린 것으로, 미점(米點)과 부벽준(斧劈皴) 등을 혼용하여 나타낸 바위표현과 담청색의 색감, 솔숲의 수지법(樹枝法), 흑갈색의 미점준법 등에서 정선화풍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 그림에서는 수채화풍을 연상시키는 담채처리에서 현대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석공도」 등의 그의 풍속화들은 윤두서(尹斗緖)조영석(趙榮祏) 등 사인파(士人派)풍속화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서 뒤에 김홍도의 풍속화풍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槿域書畵徵(吳世昌, 啓明俱樂部, 1928)
韓國繪畵大觀(劉復烈, 文敎院, 1969)

[집필자]

허영환(許英桓)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